피해자들 "진정한 사과 없이 변명 일관" … "임명되면 또 대규모 공안몰이" 우려도

"삼청교육대에서 받은 구타와 고문이 어제 일 같은데 사과나 보상은커녕 그 주범이라 할 자가 총리로 거론되다니 이 나라가 제정신이 있는 겁니까?"

삼청교육대 장기 복역 피해자들(삼창장기수피해자동지회)이 13일 국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삼청 내무분과 출신 이완구 총리 절대 불가'와 '자진 사퇴'를 주장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제형 기자


◆"어제 일처럼 소름돋는다" = 이 적(57) 목사는 자신이 지은 시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서 3년을 복역하고 나와 지난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 학살 피해와 고문 사례를 증언했다.

그는 "한밤 중에 '빤빠라' 지시가 떨어지면 연병장에 팬티 바람으로 집합했고 조교는 팬티만 걸친 우리 몸에 냉수를 쏟아 부었다. 너무 추워 몸을 웅크리면 그때부터 구타가 쏟아졌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심청교육대에서 받은 고문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이택승(77)씨는 "구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날엔 허벅지를 꼬집는 벌을 주겠다며 십자가에 몸을 묶고 펜치로 허벅지 살을 꼬집었다. 짐승에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살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고 치를 떨었다.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삼청교육대를 기획 입안한 국보위 내무분과 출신이 국무총리에 거론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보위 내무분과는 삼청교육대의 입소자 검거계획과 분류심사 등을 담당하고 이를 집행한 경찰조직 최고 사령탑으로서 아무리 하위직이라도 실무자였다면 삼청학살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나처럼 억울하게 끌려와 구타와 고문에 찌들었던 한 동료가 '꼭 살아 나가 삼청교육대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한데 그 주범인 국보위 내무분과 출신이 총리를 한다니, 이건 나라가 아니다"며 "그때 진실규명을 부탁했던 동료는 며칠 뒤 교관이 휘두른 철근에 낭심을 맞고 즉사했다.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보위 내무분과 출신 총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진행중인 '삼청교육대' = 삼청교육대 사건은 전두환 씨 등 신군부가 1980년 세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가 '불량배 소탕계획'(삼청계획 5호)에 따라 약 6만여 명을 영장 없이 무차별 검거, 그 중 4만 여명을 수용해 강도 높은 유격 훈련, 가혹행위를 시켜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 으로 명시된 검거 기준에 따라 불량배 뿐 아니라 노조원, 야당 당원, 시국사범들은 물론 여성과 어린 학생들도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다.

자료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은 A, B, C, D 등급으로 나누어 분류됐다.

현행범인 A급은 교도소로 넘겨졌고 죄 없이 끌려간 대다수 B, C급 피해자들은 순화교육대를 거쳐 최악의 인권유린이 자행된 전방 군부대의 '근로봉사대'에 넘겨져 6개월부터 3년간 강제 노역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반신불수가 됐다.

국방부 정식 발표에 따르면 삼청교육대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는 54명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희생자 통계에 의하면 사망자가 339명, 고문후유증을 겪는 사람만 2700명에 이르는 등 삼청교육대의 진실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훈장까지 받았는데 "중요한 역할 아니다" = 2007년 12월 발간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서도 삼청교육대 사건을 대규모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의원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자는 국보위 내무분과위에 소속돼 활동했는데,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분과위는 삼청교육대 사건에 주요 임무를 수행했다"며 "이 후보자가 삼청교육대 계획 수립과 집행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그 공로로 보국훈장광복장을 받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치안본부 기획감사과 경정으로 일하다가 국보위 내무분과에 행정요원으로 파견돼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삼청교육대 사건 이듬해 31세의 나이에 홍성경찰서장에 부임했다.

국무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후보가 1980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국보위의 내무분과위원회에 파견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가장 하위직인 실무 행정요원이었다"며 "복무 사실은 인정하나 삼청교육대와 관련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목사 등 피해자들은 "(이 후보자가)국보위 경력 등 삼청교육대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점 등으로 볼 때 총리가 될 경우 또다른 대규모 공안몰이가 우려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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