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근절이 핵심 … 국제 수사공조로 해외 본거지 뿌리뽑아야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커지면서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고 근절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책의 중심은 범죄자들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을 중점 과제로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보이스피싱을 차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말한다. 외국 콜센터에서 범죄 시도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국내에서 돈을 빼가지 못하면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수사공조를 통해 본거지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조성목 금감원 선임국장

◆보이스피싱 연구소와의 두뇌싸움 = 조성목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장은 서민금융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전문가다. 조 국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속칭 '연구소'를 만들어 항상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대책을 내놓으면 유효기간이 10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빈틈을 노리고 접근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대책 발표를 하지 않고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대응책을 실행하기도 한다"며 "금감원과 금융기관, 경찰 등 유관기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구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범행의 마지막 단계는 결국 빼돌린 돈의 인출"이라며 "이체한도를 줄이고 이체 후 일정 시간 돈을 인출하지 못하게 하고 본인 인증 방식을 추가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이상 쓰지 않은 계좌는 의심계좌로 보고 해당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는 비밀번호뿐만 아니라 휴대폰이나 일회용비밀번호(OTP)발생기를 통한 추가 인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적 예방과 함께 경찰의 적극적인 단속도 주문했다. 조 국장은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해외에 본거지를 두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지만 수사기관들이 중국과 필리핀 등 외국 정부의 수사기관과 공동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야 근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이 밝힌 대책은 국내의 제도 개선에 제한돼 있다. 조 국장은 "지금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다 쓰고 있다"며 "해외 범죄 조직들은 단속이 느슨한 국가로 옮겨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사기 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기동 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

◆"자금이체, 사전 문자 발송해야" = 이기동 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범죄자들의 범죄 도구인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없애면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자들한테 최고 중요한 준비물이 대포통장"이라며 "국내에서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2007~2008년 중국 보이스피싱 총책들에게 수 천개의 대포통장을 전달하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2년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검찰조사과정에서 일부 피해자들이 자신의 보이스피싱 범죄로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금융사기 예방 활동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현재 300만원 이상의 이체에만 적용되는 10분 지연인출제도나 시간을 30분으로 늘리는 방안도 한계가 있다"며 "지난해 7월 농협계좌의 1억2000만원을 텔레뱅킹으로 사흘동안 298~299만원씩 41차례에 걸쳐 빼간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600만원 이상 거래에만 해당됐는데 문제가 되자 300만원으로 낮췄다"며 "하지만 300만원도 이익이 남기 때문에 범죄를 막기에 부족하고 100만원으로 낮추면 대포통장 모집책이 받는 금액밖에 안되기 때문에 범죄의 실익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금융사들은 자금 이체나 결제 이후 문자를 발송한다. 하지만 사전에 승인여부를 묻는 문자를 발송하면 예방을 할 수 있다"며 "고객이 설정한 한도 이상의 돈이 빠져나갈 때 거래 승인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포폰 개설도 어렵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폰 개설 용도를 제대로 확인해야 하고 범죄에 악용될 때는 민형사상 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통장개설처럼 확인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의형 서울 서대문경찰서 팀장

◆"해외에서 들어오는 인터넷전화 표시 필요" = 백의형 서울 서대문경찰서 지능팀장은 2009년부터 보이스피싱 범죄를 기획수사한 베테랑이다. 백 팀장은 "해외에서 걸려오는 유선전화의 발신번호에 국제전화식별제도를 실시해 앞자리에 001, 002식으로 강제로 붙이게 했더니 2009년과 2010년 보이스피싱이 크게 줄었다"며 "이후 인터넷전화를 이용해 발신번호를 바꾸면서 유선전화에만 적용했던 국제전화식별제도가 실효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전화도 해외서버에서 들어오는 라인에 대해 기술적으로 식별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식별 서비스를 하려면 정부가 소규모 별정·일반통신 사업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팀장은 "소규모 통신업체(별정통신, 일반사업자, 미등록 사업자)가 수 천개 있는데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숫자파악도 못하고 있다"며 "통신업자들은 보이싱피싱 범죄에 사용된 회선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필터링만 해줘도 보이스피싱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은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자 2004년 범정부적으로 일반 금융과 통신소비자의 불편을 개의치 않고 강력히 대응했다"며 "별도의 정부 부처를 만들고 소비자가 사기범들과 통화하다가 수상해 단축번호를 누르면 경찰이 바로 영장도 없이 감청할 수 있도록 해 사기여부를 판단해 알려주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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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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