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사지도 팔지도 못해

현재 104.4톤 런던 보관

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제 유가 급락과 중국 경기둔화로 신흥국 금융시장 자금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 선호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온스당 1000달러선까지 위협받던 국제 금시세는 29일 1115달러까지 올랐다. 한 달 만에 무려 10% 이상 오른 셈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속속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세계 중앙은행이 매입한 금의 총량은 179.5톤으로 WGC(세계 금 위원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0년 이후 두 번째로 많았다. 세계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올해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에서는 향후 금값이 3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 보유와 관련해서는 한국은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 매입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외환보유액(3679억달러)의 1.3%(장부가)인 104.4톤이다. 세계 34위(국제기구 포함 순위)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2011년 이전만 하더라도 14.4톤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1~2012년 사이에 현 보유량의 90%에 가까운 90톤을 집중 매입했다.

문제는 하필 당시 국제 금시세가 매우 비쌀 때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국정감사 때마다 '비싼 금 매입' 문제로 여론의 도마에 올라야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은행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매입한 금 때문에 1조4000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 의원은 "금 보유 이유가 투자다변화와 외환보유액의 신뢰도 제고 등 장기전략적 관점에서 결정된 것이라면 국제 금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도 금을 일정비율 투자하고 있어야 한다"며 "한국은행은 지금이라도 큰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금의 향후 보유 의사와 처리방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 매입 트라우마'에 빠진 한국은행은 2012년 이후 금을 한 번도 추가 매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100톤이 넘는 한국은행의 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엔 한국은행 대구지점에 금괴로 쌓아두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모든 금괴를 영국 런던 영란은행으로 옮겼다. 사고 팔 때마다 금괴를 옮길 경우 발생하는 비용과 보안 리스크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런던에 보관 중인 금괴는 순도 99.5%에 400트로이온스(12.5㎏) 국제규격을 따른다. 약 8320개의 금괴로 쌓여 있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금괴 보관과 관련해선 역사적인 사건도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6월27일 서울 본점에서 금 1070㎏과 은 2500㎏을 군 트럭에 싣고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로 옮겼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급박해 금 260㎏과 은 1만6000㎏은 미처 옮기지 못해 서울을 장악한 북한군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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