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장회의 발언 뒤늦게 알려져 … 강경일변도 대북정책과 밀접한 연관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지난주 막을 내린 외교부 재외공관장회의에서 "2년 내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공개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복수의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원장은 이날 170여명의 대사, 총영사들이 모이는 재외공관장 회의 이틀째 일정인 국정원 주최 안보정세 설명회에서 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보당국 수장의 북한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박근혜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정보당국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정부 임기 첫해인 지난 2013년 12월 31일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공관에서 열린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자유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이 발언에 대해 원혜영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들은 "남 원장 발언이 사실이라면 가뜩이나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더욱 파국적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남 원장 발언은 북한이 끊임없이 핵무장론의 이유로 제기해온 '체제붕괴 흡수통일전략' 의혹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보당국 수장의 통제되지 않은 발언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를 의식한 듯 남 전 원장은 이후 국회 법사위 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대됐기 때문에 북한 붕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런 상황을 눈을 부릅뜨고 예의주시하라 그런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인식이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 등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북한붕괴론'집념에 되레 북핵대응이 소홀했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문제는 이러한 보수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이 이명박정부 시기에는 북한의 급변사태론, 박근혜정부 3년간 통일대박론이라는 간판만 바꾼 것일 뿐 사실상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다는 데 있다"면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강력한 제재행보 이면에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을 끝낼 수 있다'는 북한 붕괴론에 대한 집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북한문제 전문가도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통일이 돼야 해결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면서 "이는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붕괴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결국 2013년 남재준 전 원장 발언이나 이번 이병호 원장의 발언 역시 이런 흐름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교안보라인이나 정보당국 수장들의 이 같은 인식은 대통령의 정책판단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일 국립현충원 참배를 하고 난 뒤 방명록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2016년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글귀를 남긴 데 이어 지난 2월 국회연설에서는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며 공개적으로 '체제 붕괴'를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불쑥불쑥 등장한 실체도 없는 '붕괴론'은 지난 30년 가까이 남북관계에 악영향만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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