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안희정 낙마 "우리 후보 없으니…"

젊은층 '어대문' 노년층 '홍찍문' 구분 확실

보수 "문재인 꺾을 후보는 누구?" 고심 깊어

26일 찾은 대전역 주변 시장 상인들의 표정은 꽃샘 추위 탓인지 썰렁했다. 역 광장 한켠에 서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유세차는 스피커를 틀지 않아 조용했다.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대부분 시민들은 시큰둥했다.

유세현장 천안시민들│24일 오후 천안 신부문화의 거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집중유세에 참가한 시민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천안 =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역전 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는 심 모(69·여)씨는 "충청 후보들 다 나가 떨어지고 보수 후보라고 나온 사람도 영 성에 차지 않는다"며 "이번 대선에 별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 모(26)씨는 "안희정 지지했는데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수모 당하는 걸 보고 문재인에게 등을 돌렸다. 누구를 찍을지는 아직 못 정했다"고 말했다.

"문재인이 되지 않을까? 나는 안 찍을거지만" = 대망론이 꺾인 충청인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허'했다. 충청 출신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과 함께 대선 도전 의지를 표했을 때 충청은 들썩였다. 드디어 충청 출신 대통령을 갖게 된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당선 가능성도 높았다. 출마만 하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구정 직후 반 전 총장은 사퇴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고 모(60)씨는 "조카 때문에 낙마하다니 너무 아까운 인물을 잃었다"며 아쉬워 했다.

대연정을 들고 나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문 전 대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관공서에 근무하는 이 모(54)씨는 "후보도 없고 캐스팅보트 역할하기도 만만치 않으니 충청인들 입장에선 이번 대선이 흥이 안 나는 선거"라면서 "남의 집 잔치에 들러리서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심이 적다고 해서 투표율까지 낮아지리라고 보는 시각은 적었다.

중앙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전 모(54)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촛불 집회 등을 겪으며 참여의 중요함,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려면 국민적 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예측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박 모(62)씨는 "꼭 누구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는 반드시 할 생각"이라며 "누구를 찍을지는 고민이 많이 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세론이 다시 살아나는 기운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날 만난 다수의 시민들은 "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면서도 "나는 안 찍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충청 표심 "막판까지 고심할 것" = 충청 지역 보수층의 고민은 더욱 깊다. 충청 출신 후보자가 없는데 더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보수 후보마저 부재하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전략적 투표를 보수층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견은 갈린다. 보수의 싹을 지켜내려면 한국당 홍준표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쪽과 어차피 보수 후보는 가능성이 없으니 문재인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 내키진 않지만 안철수를 찍어야 한다는 층으로 나뉜다. 안 후보의 지지율 급락은 충청 지역 보수층의 이런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보수단체에서 활동 중인 충남 홍성군 김 모(68·여)씨는 "처음엔 안철수를 지지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지 유보 이유로 안 후보의 불분명한 이념 성향을 지적했다. 평생 새누리당만 찍어왔다는 전 모(68)씨는 "처음엔 반기문, 다음엔 황교안에게 희망을 걸었다. 홍준표는 그냥 코미디언 같다"며 "그래도 덜 때묻고 배운게 많은 안철수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육류 도매상을 운영하는 유 모씨(61)씨는 "문재인은 싫지만 안철수도 TV토론 하는 것 보니 영 대통령 감이 아닌 것 같다"며 "보수의 장래를 위해서 유승민에게 한 표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층에선 문재인 지지가 높았다. 한남대에 재학중인 박 모(24)군은 "취업난 등 현재 상황에 불만이 많은 20대는 정권교체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문재인이 적임자"라고 말했다. 안 후보를 거론하는 젊은층도 있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김 모(24)군은 "적폐 청산이란 말이 거슬린다. 많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면 안 그래도 심각한 사회 갈등이 심해질까봐 걱정"이라며 "IT를 잘 알고 50대인 안 후보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십수년간 선거 관련 업무를 맡아와 바닥 정서를 잘 아는 이 모(50)씨는 "현재는 문 후보가 앞서지만 압승을 거론할 정도는 아니다. 보수 표심이 반문재인 대항마로 안 후보와 홍 후보 중 누구를 택할지가 변수"라며 "충청의 고심은 막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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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윤여운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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