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만원 쓸 수 있는 날은 행복" … "청년공약 기대 안해"

지난달 28일 오후, 내일신문과 대학생 주간지 대학내일은 서울 중구 내일신문 본사 대회의실에 20대 대학생·취업준비생 등 7명과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20대 총선을 좌우했다는 평가를 받는 20대의 현안은 무엇인지, 이번 대선과 사회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물어봤다.

2시간 남짓 걸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초반 얼었던 분위기가 풀리자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들의 화두는 '생존'이었다. 이에 대한 기성세대 및 대선주자들의 무관심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는 듯한 표현들도 대화 곳곳에서 포착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20대 표심이 생존에 대한 위기감과 기성사회에 대한 분노 언저리에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 정치문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20대 여러분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

공민정(공) : 신문방송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졸업했다. 취업 준비에 좀 지쳤다.

권순민(권) : 사회학 전공 중이다. 학생회·학내언론, 기고활동 하면서 지내고 있다.

권용범(범) : 경영학과 3학년이다. 원래 정치에 관심 없었는데 군대 후임병이 국회 보좌관 하다 온 경제학도였다. 그 형 얘기 들으면서 정치에 관심 갖게 됐다.

김민규(김) : 기계 전공하고 있다. 원래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오늘 시험 끝났다. 힘들었다.

백승민(백) : 방송영상·독일어 전공. 9학기째다. 직장인이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송희(이) : 졸업하고 대학내일에서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자립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고 있다.

조미송(조) : 문헌정보학과다. 정치는 잘 모른다. 이번이 첫 대선이다.

■요즘 관심사나 절박한 게 뭔가.

: 제도권 밖에서 먹고 살 만큼 벌고 지낼 방법은 없는지 고민 중이다. 그런데 롤모델이 없다. 절박한 건 집 보증금. 엄마한테 갚고 싶은데 갚을 수가 없다. 결국 대기업이나 작은 회사에 들어가 허리띠 졸라매지 않으면 못 모을 것 같다.

: 선배들이 취업준비하는 모습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싶다. 조만간 때가 올 거다. 아직 열정과 낭만을 원하는데.

: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은데 요즘 좌절하고 있다. 여론 흐름을 보면 이 나라에 사는 게 정신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홍준표, 문재인 후보 뿐만 아니라 교수님 같은 가까운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하니까.

백승민(25)│ "다음 대통령은 권위적이지 않길"
: 돈이 가장 큰 문제다. 돈만 있으면 문제의 80%는 해결된다. 하루에 1만원 쓰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 하고 있는데도 살아가는 게 눈치 보이고 버겁다. (미래는?) 모르겠다. 일단은 하루하루 버텨보는 식이다.

: 주거문제. 집값 때문에 고시텔에서 살고 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넉달 지나니까 내가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고 우울하더라. 용돈 안 받는다. 스스로 벌고 있다. 점심 밖에서 먹고 통신비 내고 하면 한 달에 60만원도 안 남는다. 습관적으로 통장잔고를 보고 매일 쓸 수 있는 돈이 얼만지 확인한다. 2만원 쓸 수 있는 날은 너무 기쁘다. 도대체 얼마나 모아야 서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미송(21)│ "꼰대 좀 없어졌으면. 우리 세대에도 있어"
: 나도 하루에 1만 원 정해놓고 쓴다.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정치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아는 언니에게 대선토론 봤냐고 물었는데 "아니, 알바 하느라 못 봤어" 했다. 휴학을 해도 돈이다. 스트레이트(휴학 없이) 졸업하는 친구들도 사정을 보면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는 등록금 때문이더라. 나는 장학금을 받고 있다. 성적에 예민해진다. 학점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한 학기 300만원을 집에 손 내밀어야 한다. 연애가 그나마 낙.

■촛불집회가 석 달 가까이 이어졌다. 솔직한 느낌은?

: 작년 12월에는 다 나갔다. 정치적인 문제는 모르겠고 대통령을 정말 끌어내려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사회가 별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은 세상대로 바뀌고 그 과정에 내가 그냥 사는구나 싶다.

"권용범(24) │촛불집회 시민의식 달라졌지만 대통령 끌어내리는 데 그쳐"
: 지난해 말까지 울산에서 의경 복무했다. 집회 그닥 안 좋아한다. 하지만 촛불집회 보면서 시민의식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예전엔 두들겨 맞고 그랬는데 이번엔 의경도 많이 챙겨주더라. 그런데 천만명이 모여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룬 것 같진 않다.

: 탄핵안 가결되기 전까지 정말 자주 갔다. 촛불집회는 보수기조였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건 공화국의 원칙을 어겨서다. 상식을 '지키기' 위한 집회니까 진보가 아닌 보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될 대로 흘러가는구나 싶었다. 1987년도엔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지금은 그냥 박근혜 개인을 끌어내린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차도를 걸을 수 있다는 게 그냥 재미있었다. '평화시위'라는 언론 보도는 불편했다. 언론, 경찰, 시민이 알아서 맞물려 돌아간 기분. 인상 깊고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했다.

이송희(25)│ "청년정책 듣고 싶은데 후보들은 자기들 과거 얘기만"
: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돌 팬들이 쓰는 응원봉을 가지고 오거나 깃발을 들고 오거나. 또 집회 초기에는 마스크, 모자 쓴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중엔 거의 없었다.

: 안 나가봤다. 아버지가 경찰 쪽 일을 한다. 집회 때마다 야근하셨다. 아버지가 야근하면서 고생하시는데 아들인 내가 나가기가 조심스러웠다.

: 중3때 이명박 대통령, 정치에 관심가질 만한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촛불집회와 탄핵은 민주주의를 알 기회였다. 동시에 정치에 혐오감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 20대가 얼마나 촛불집회를 기억할까. 냄비근성이란 게 있잖나.

■정치 관련 활동은 어떻게들 하는지?

: 의사표시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누르는 정도. 정당 홈페이지 들어가거나 팟캐스트 들으면서 정보를 찾아본다.

: 페미니즘 관련해 댓글을 많이 다는 편이다. 인턴 일 때문에 대선 콘텐츠 찾아보면서 좀 공부했다.

: 학교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재미난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구미에 맞는 의견들만 보게 된다는 점, 다른 의견에 댓글들이 공격적으로 달려서 조심스럽다는 점은 안 좋다.

김민규(21)│ "대선후보들 일자리공약 숫자 뿐, 지키는 것 본 적 없어"
: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토론 다시보기.

: 유시민·전원책이 나오는 '썰전' 즐겨본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 페북이나 블로그에 가서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는다.

: 신문 대신 주간지를 많이 읽는다. 성향표시는 안 한다. 선배들한테 추궁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

■대선후보들의 청년공약은 어떤가.

: 문재인 81만개, 홍준표 110만개. 숫자 뿐이다. 말 해놓고 지켜진 적 없어서 기대 안 한다.

: 저번엔 반값등록금이 있었는데 이번엔 '적폐청산'에 가려져서….

: 정의당이 상속증여세 재원으로 20대에게 1000만원씩 배당한다고 한 공약이 기억난다.

권순민(24)│ 희망이 없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
: 아는 분이 문재인 캠프에 있어서 들어봤는데 실제로 20대 공약이 별로 없더라. 다른 후보들도 토론에서 현안 입장만 나오고. 안철수만 학제개편 공약 정도.

: 토론에서 20대 관련 정책이 듣고 싶은데 본인들 과거 이야기만 한다. 청년공약도, 일자리 창출도 실제 20대를 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다음 토론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노무현 이야기 좀 안 하게 했으면 좋겠다.

: 후보 대부분 민간 일자리 늘리겠다는데 민간이 안 하면 그만이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부문 일자리인데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우리가 공무원 자리 늘려달라고 한 게 아니다.

■다음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면 좋겠나?

: 비혼 여성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결혼 안 하고 싶나) 네. 내가 살면서 쌓는 경력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육아도 아직은 여성이 떠맡는 걸 많이 봐서. (저출산 문제는)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공민정(28)│ "우리가 국가의 출산율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나"
: 우리가 국가의 출산율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는 없지 않나.

: 20대는 생존권이 더 문제다. 사회에 나가서도 살아갈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벌고 싶다. 새 대통령은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내가 돈을 얼마 써야할지 생각하기도 힘든데 나라걱정엔 한계가 있다.

: 대통령이 권위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주는 정권이 됐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재미를 줬으면 좋겠다.

: 좀 '비관적인' 사람이길 바란다. 홍준표 후보는 계속 한국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성장보다 분배라고 본다. 사회의 부는 충분하다. 파이 키우기보다 나누기를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이건 복지가 아니라 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도 주면 게을러진다고 하는데 난 이제 사람들이 좀 게을러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 전 대통령이 못했던 걸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통을 하나도 하지 않았잖나.

: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는데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부터 갖춰주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집값이 40배 뛰는 동안 임금이 3배밖에 안 올랐다고 한다. 그런 문제를 이슈로 잡아야 하는데 아쉽다.

: 노동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얼마전 한 종편 PD가 생을 마감한 것 보고 방송전공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 과학정책의 연속성을 만들어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대통령이 바뀔 때 마다 부처가 바뀌고 기조가 바뀐다. 드론, 3D프린터 이런거 이미 하락추세인데 제대로 개발도 안되고 인기가 식는 것은 정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 전공 못 살리고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20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공무원이 답이 아니잖나.

■끝으로 여러분 세대의 숙제를 꼽자면?

: '희망이 없는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건국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자식이 못 살 게 확실한 시대라는 기사를 봤다. 동의한다. 부모님이 제게 쏟아 부은 만큼 제가 못 뽑아낼 거다. 구직·생활환경도 부모세대와 딴판이다. 기성세대는 관심 없지만 20대는 고민해야 한다.

: 우리는 그나마 4년제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다. 여기 포함 안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

: 친구들끼리 버릇처럼 하는 게 '아,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다. 자살만 안 해도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너무 미래가 안 보이니까. 너무 이탈해버렸으니까.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을 좋아한다. 나는 우리가 망한 거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어떻게 잘 해볼까 생각했으면 좋겠다. 어른들에겐 나약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건 당신들이 이해해줘야 한다.

: 분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매사에 너무 예민해졌다. 분노가 좀 사그러들었으면 좋겠다.

: 꼰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에도 꼰대가 있다. 사회 나가서도 꼰대질 할 게 뻔하다.

진행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속기 손수민·사진 이의종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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