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한류콘텐츠는 저 멀리 중동 남미까지 인기다.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쟁자는 내 옆자리가 아닌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됐다. 진정한 글로벌 시대다. 하지만 모두가 세계화를 외치는 지금, 오히려 지역 맞춤 사업과 이벤트는 늘어가는 추세다.

지자체와 정부는 왜 지역문화 활성화에 집중하는가? 이는 성장중심 무한경쟁이 빚어낸 세대·지역 간 불신과 가치혼란을 지역중심 공동체를 통해 극복해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국 78개 권역에서 지역민의 눈과 귀가 되고 있는 케이블 방송은 대표적인 지역매체다. 지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방송이지만 범위가 '내가 사는 우리동네'에 한정되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케이블 지역채널은 시·군·구 단위 뉴스로 지역밀착 정보를 제공한다. 지방자치 의회 소식이나 선거방송도 주민에게 유용한 정보가 된다. 제주도 케이블 지역채널은 동창회나 결혼식 같은 소규모 행사도 자막으로 알려준다. 유용한 정보와 함께 지역 공동체 형성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재난상황에서 위력 발휘한 지역방송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많은 언론이 군사대치와 북한동향을 중심으로 보도할 때 케이블 지역채널은 현지 주민들의 고충을 전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11월 포항 대규모 지진에서는 지역매체의 역할이 더욱 컸다. SNS로 피해상황을 수시로 제공하며 24시간 특보체제에 돌입했다. 이는 음식보다 가족 친지들의 안전을 먼저 확인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지역민의 마음을 읽은 조치였다. 중앙언론이 피해사례 보도에 집중할 동안 향후 복구작업, 피해보상, 도시재건계획 등 희망적인 뉴스를 편성했다.

프로야구나 전국체전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지역 연고팀을 대놓고 응원하는 케이블의 편애방송은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케이블 지역채널 현실과 제작환경은 녹록치 않다. 정부 자료를 보면 케이블방송사 한개의 광고매출은 14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역채널 운영 외 다른 광고수익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적자편성을 하면서까지 지역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는 '지역민의 알권리'라는 방송의 공익성이 유료방송사업자의 수익과 효율성보다 앞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지역채널 의무재전송을 확대하는 한편, 세금감면과 지방정부 보조금 지원 등 지역채널에 각종 제도적 혜택을 제공한다. 지역채널은 이 보조금으로 지역 관련 환경 교육 문화 등 지역발전에 도움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국내에도 '지역채널특별법'이 있지만 지원대상은 지역MBC와 지역민방으로 한정해놓고 있다.

캐나다는 지역채널 프로그램 50% 이상을 지역주민이 의견내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위성방송 등 수익성 높은 유료방송 사업자가 지역방송에 의무적으로 기금을 지원한다. 일본 지역채널은 지자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재난·재해방송이나 선거방송과 관련해 지상파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일본 지역채널은 국내와 달리 보도 해설·논평이 가능해 지자체나 지방의회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다.

지역채널 기능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국내 케이블 사업자들은 5년간 약 4500억원 가량을 지역채널에 사용할 계획이다. KBS 지역국, 지역MBC, 지역민방이 15-30% 가량 지역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케이블 지역채널은 자체제작률이 100%다. 그만큼 지역 소식 편성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모두가 글로벌을 외칠 때 묵묵하게 로컬리즘을 추구해 온 케이블 지역채널 기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일선 제작자나 케이블 사업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정책당국에서 중요한 아젠다로 고민해주길 바란다.

최종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권한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