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헌필요성을 제기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87년 개헌이 서둘러 결정되는 바람에 미비한 부분이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감스럽게 지금까지의 상황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충분한 시간과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개헌논의가 진행되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말 가까스로 여야가 개헌특위를 정개특위와 합쳐 활동시한을 6월까지 연장하는데 합의했다. 특위활동이 연장되었다는 것은 국회가 개헌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최소한 긍정적인 결과다.

정치가 타협이라는 의미는 상대의 양보를 받기도 하고 상대에게 양보도 하는 주고 받는 과정을 의미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헌합의안이 타협의 산물에 그쳐서는 안된다. 자칫 누더기 개헌안이 도출될 가능성 때문이다. 헌법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초다수결적 동의와 아울러 국민투표가 요구되는 것은 헌법개정의 신중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여기서 신중성이란 국민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의미한다.

이번 신년 조사는 개헌관련 기존 여론조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국민정서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개헌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정당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국민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작년 말 임시국회 종료직전까지 이미 여야가 합의한 법안처리를 미뤄 이해당사자들을 애타게 했던 것은 정치인들의 정쟁에 묶여 국민을 외면한 처사였다. 이러한 상황이 매번 반복되기 때문에 국회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회권력과 행정부 권력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1인 책임의 행정부는 속성상 효율성 가치에 치중한다. 국정운영에 목표가 설정되면 일정과 비용에 맞추어 착오나 낭비 없는 추진방법을 모색한다. 반면에 국회의 의사결정은 소수자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있는 다원적 가치를 중시한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개정함에 있어서 국회를 통해 다양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적 가치와 조응한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70%에 이르지만 헌법개정을 대통령이 주도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설문항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응답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투표일정에 맞출 수 있도록 대통령이 발의해야 한다'와 '투표일정을 미루더라도 국회가 발의해야 한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개헌발의를 대통령이나 국회 중 누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는 큰 차이가 있다. 투표일정의 변경이라는 비용을 치르더라도 국회가 개헌의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중도이념의 국민 중 대통령 개헌발의에 찬성하는 비율은 31.6%이고 국회발의에 찬성하는 비율은 41%로 큰 차이를 보인다. 국회는 자주 국민을 실망시키지만 그래도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회의 국민대변 역할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무당파의 경우 대통령 발의 찬성이 24.7%이고 국회발의 찬성이 41.7%다. 무당파의 상당수는 정당에 대한 기대가 없으며 정치에 대해 냉소적 집단이다. 그럼에도 개헌발의는 국회가 해야한다는 답변이 월등히 많은 것은 국회가 제 역할을 하라는 촉구의 목소리로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국회가 분발해야 할 대목이다.

국회는 국민에게 의견을 묻기 전에 충분한 정보를 전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이번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원정부제에 대해 모른다는 응답이 59.8%였는데, 대재 이상의 집단에서도 모르겠다는 응답이 55.3%다. 양대 거대정당 지지자들 중 모르겠다는 응답도 모두 55% 언저리다. 특정집단에서만 개헌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헌특위에서는 전국을 돌며 국민대토론회를 주최했지만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데 실패한 것이다. 개헌특위 활동이 6월까지 활동이 연장되었으니 이제 왜 국민들의 개헌관심이 낮은지에 대해 근본원인부터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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