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지 없으면 공공부문도 어려워

민간에 강제적 도입은 쉽지 않을 듯

금융권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노동이사제 도입 논란에 대해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일단 소극적인 자세다. 정부는 부처별로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민간 금융회사들은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도입에 부정적이다. 특히 민간에 근로자추천이사제를 강제로 도입하는 문제는 주주가치의 훼손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도입에 난관이 예상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혁신성장 지원단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기재부·금융위, 사회적 합의만 강조 = 지난해 말 금융혁신위가 권고한 '공공기관은 노동이사제, 민간금융회사는 근로자추천이사제'는 현재 정부부처에서 두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정부 관할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는 당초 지난해 말까지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법률개정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었지만 다소 늦어지고 있다. 금융위는 직접적인 당사자로 금융혁신위 권고 사항에 대한 이행반을 운영하기로 하고, 다음주 쯤 혁신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부처가 노동이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의문이다. 정부 경제관료나 금융관료들의 노동자 경영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청와대나 장관들의 강력한 주도력이 있어야 하지만 특별히 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노사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유럽과 우리나라는 법체계와 노사문화가 다르다"고 말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동연 부총리겸 기재부장관은 아예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기재부는 법률 개정을 위한 외부 용역을 맡겨 놓은 상태로 아직 구체적인 제도개선책은 내놓지 않았다. 공공기관 노조 한 관계자는 "기재부는 공공기관을 자신들의 관리대상으로 인식하고, 관료들은 노동이사가 참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대통령 공약사항이어서 마지 못해 하려는 생각이 강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회사 "지켜볼 따름이다" = 정부가 제도개선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민간 금융회사들은 일단 관망하는 모양새다. 안그래도 일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드러내놓고 반발하기 어려운 처지다. 은행연합회 한 관계자는 "금융공기업은 정부방침에 따라 가면 될 것"이라며 "혁신위도 민간은 주주 등 이해 관계자와 충분한 논의를 해서 검토하라고 권고한 것 아니냐. 우리는 지켜볼 따름이다"라며 불편한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비교적 자기 소신을 분명히 하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손 행장은 내정자 때인 지난해 말 "노동이사제 문제는 여러가지 사회분위기나 다른 금융기관을 보고 말씀드리겠다"면서도 "노조는 경영진이 하는 고유의 경영 권한에는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측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반대를 분명히 했다. 한국경총 이동응 전무는 11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유럽에서 실시하는 근로자 이사제의 문제가 너무 많이 드러나서 지금 사그러지고 있는 상황이고, 경영효율성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근로자 참여를 법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인 상황과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무는 그러면서 "기존의 노사협의회 제도를 잘 살려나가면 충분히 근로자 경영참여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근로자가 추천하는 인사를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2016년 당시 김종인 민주당 대표 등 122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에는 '우리사주조합 또는 사외이사가 추천한 후보자 1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국회는 검토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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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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