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 창간 '스펙테이터'

"암호화폐가 문제의 해답"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근본적 매력은 '신뢰할 만한 가치의 저장소'라는 데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28년 창간된 영국의 고급 주간지 '스펙테이터'의 저명 언론인이자 소설 '케빈에 대하여'를 쓴 작가이기도 한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최근호에서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암호화폐의 잠재력은 혁명적"이라며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고 통제하는 권력을 정부로부터 되찾아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슈라이버에 따르면 현대 경제는 100% 법정화폐로 운영된다. 법정화폐란 금이나 은 등 고가의 희소자원과 교환할 수 없는 불태환화폐란 의미다. 정부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2008년 이후 시행된 각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 프로그램이 겉보기에는 큰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고 슈라이버는 지적한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부동산이나 예술품, 수집품, 주식 등 자산시장엔 사상 최대의 거품이 끼어있다. 비트코인의 가격 자체가 인플레이션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너무 많은 돈이 돌고 있다. 이 분야 투자에서 저 분야 투자로 마구 옮겨다닌다. 이런 거품이 형성된 이유는 중앙은행들이 제멋대로 돈을 찍어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특별하게 만든 이유는 통화의 공급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귀금속과 같은 기능을 한다. 1비트코인을 생산하는 데엔 엄청난 컴퓨터 연산력이 필요하다. 환경보호론자들이 "에너지 잡아먹는 하마"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시간이 갈수록 비트코인 채굴에 필요한 컴퓨터 연산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현재 통용되는 모든 암호화폐가 절대적인 공급 한계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슈라이버는 "이는 법정화폐와 정반대 모습"이라며 "코흘리개도 자산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안다"고 지적했다.

수년 동안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을 2% 목표에 맞춰 관리하고 있다'고 주지시켰다. 하지만 영국의 소비자물가는 이미 3%를 넘었다. 23년 뒤 돈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대중들은 '돈이란 고기와 같아 시간이 흐르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슈라이버에 따르면 1797년 영국 1파운드화는 1914년 1파운드와 가치가 동일했다. 가치의 부침이 있었지만 117년을 평균내면 인플레이션은 없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1750년부터 1914년까지 164년을 살피면 1파운드 가치는 반으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어떨까. 1파운드화의 가치는 1/100인 1페니로 곤두박칠쳤다. '전지전능'하다는 미 달러도 다를 바 없다. 현재의 1달러는 1세기 전 1센트 가치에 불과하다.

슈라이버는 "고전경제학에서 통화의 기본 목적 중 하나가 가치저장 수단이지만 현대 경제의 법정통화들은 그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나라들이 돈 찍어내기 게임을 벌이면서 돈의 가치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정통화에 대한 고의적 인플레이션이 벌어지지만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수치를 조작한다. 일반인의 예금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사례는 물가지표에 주택구입비 등 거주비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고의적이고 지속적인 부의 강탈이고, 궁극적으로 숨겨진 세금이다. 부채에 의존하는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좋아한다. 쓸 때는 보다 가치 있는 돈으로 쓰고, 갚을 땐 보다 가치 없는 돈으로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떤 소득층의 시민들이라도 오늘 호주머니에 든 1파운드가 내일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있어서도 1파운드의 가치를 가질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며 "하지만 현재의 통화체제에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탄했다.

슈라이버는 "고의적이고 체계적인 평가절하가 불가능한 암호화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한 암호화폐, 공급에 엄격한 제한이 있는 암호화폐, 국가의 발권력 남용을 벗어난 암호화폐를 기대한다"며 "그같은 화폐가 나온다면, 투자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더라도 내 모든 재산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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