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언론인
장행훈 선생님,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 세상을 떠나신 게 진실입니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20대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을 과시하던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불과 사나흘 전만 해도 내일신문사 회의실에서 포럼을 주도하고, 언론재단 후배들을 상대로 저널리즘의 복원을 강조하던 선생님의 건강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점심식사 때는 소줏잔도 기울이셨다지요. 테니스 라켓과 함께 싸늘한 몸으로 돌아오실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장행훈이 보는 세계'라는 칼럼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신상태와 관련된 논란을 지적하기도 했지요. 그 글이 마지막 칼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장행훈 선생님. 선생님은 저에게는 세상과 마음의 스승이셨습니다. 1959년 언론계에 몸담으신 뒤 60년 가까이 언론계에 머무르시면서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던 선생님은 꼿꼿한 선비이자 시대를 앞서가는 민주주의자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꿈꿔온 평화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 한반도에 전쟁공포가 몰려들었을 때도 선생님은 미국과 중국 등 세계지도자들에게 평화를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요. 누구보다도 해박한 세계정세 분석을 통해 꾸짖기도 하셨죠. 평화와 민주주의는 인류의 어떠한 가치보다도 소중함을 일깨워주신 혜안에 다시금 고개를 숙입니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가 움트기 시작한 것도 선생님 덕분이겠죠. 저는 기억합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촛불로 뒤덮인 광화문 광장 인근의 선술집이었죠. 언론광장 회원 몇명이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이게 나라냐'라는 함성이 온나라를 뒤덮을 때였습니다. 추위가 절정에 달해 잠시나마 몸을 녹이려고 소줏잔을 기울였습니다.

며칠 전 '장행훈이 보는 세계' 칼럼 집필

선생님은 상기된 얼굴로, 젊은이 보다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위성을 설파하셨죠. '불란서' 등 세계 언론도 한국의 촛불시위를 주목하고 있다는 상황도 설명해주셨죠. 세계에서 유례없는 명예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에 우리 모두 동의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하니 선생님의 혜안이 다시금 마음에 새겨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스승을 모시고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었던 그날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언론인이셨습니다. 현업을 떠나신 뒤에도 펜을 놓으신 적이 없기 때문이죠. 내일신문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셨죠.

언론자유와 언론개혁은 물론,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의 평화를 위한 방향을 역설하셨던 담론은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민주혁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미래다' '언론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선생님의 필치는 그야말로 광야에 울려퍼진 외침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트럼프나 시진핑, 푸틴에 대한 충고는 차고 넘칩니다. 특히 언론개혁에 대한 열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말 '한국방송공사를 빨리 정상화하라'던 외침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상화한 KBS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시다니, 서럽지 않으십니까.

선생님의 언론개혁 의지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소신을 넘은 확신이었습니다. 저서 '미디어독점'은 언론개혁의 교과서로 남을 것입니다. 보수정치세력과 거대언론, 거대언론을 장악한 다국적기업 간의 3자 유착, 그리고 거액의 선거자금 기부와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로비가 만들어낸 부도덕한 정경유착의 결과가 미디어독점이라는 것이지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제 언론개혁이다.' 선생님의 경구가 이명(耳鳴)처럼 귓전을 때립니다.

언론개혁과 세계평화 방향 제시

황망한 가운데 또 한분의 선생님을 떠나보냅니다. 26일 약속된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고견을 듣기를 고대해왔던 제가 이렇게 영전에 글을 올리다니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집니다. 이제 이 세상의 일들은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촛불혁명의 목표로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 언론자유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실천하는 일은 온전히 저희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저 세상에는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언론자유가 넘실거리겠지요.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의 모습이 현실화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김주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