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기획재정부가 '셧다운'(Shutdown)을 실시하고 있다. 국실별로 돌아가며 일괄적으로 업무를 중지하고, 직원들 전체가 쉬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 용어에서 출발한 셧다운은 오류 등으로 컴퓨터 시스템의 작동이 중지되거나 전원을 끄는 것을 말한다.

새해 경제정책방향에 '쉼표가 있는 삶'을 내건 만큼 기재부부터 솔선 수범하자는 취지다. 18일부터 이틀간 예산실 전체 직원이 이틀간 셧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주에는 세제실이 셧다운을 실시했다. 기재부는 이런 식으로 국실별로 돌아가면 자신의 연차를 쓰는 방식으로 셧다운을 운용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지시다. 새해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지난해 여름부터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휴가는커녕 주말에도 일한 직원들의 휴식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기재부의 1~2월은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은 비수기에 속한다.

기재부에 따르면 다수 직원들은 "동시에 연차를 쓰다보니 쉬는 날 업무연락 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진짜 휴가 같은 느낌"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만난 상당수 직원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대로 계획도 세우지 못했는데 휴가기간을 강제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부 직원들은 가족들이 모두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바람에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스스로 시간을 결정해야 할 연차를 '강제'로 써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젊은 직원들은 불만이 많다. 한 직원은 "만약 민간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결정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 당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부총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직원들에게 '선의'를 베푼다고 시작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직원 개개인의 형편을 따져보면 '악의의 지시'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 부총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경제정책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최근 기재부 노동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기재부 노조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기재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토대로 '닮고 싶은 상사'를 선정해 발표했다. 국장급 이상에서는 고형권 1차관, 황건일 국제경제관리관, 구윤철 예산실장, 방기선 정책조정국장, 최상대 재정혁신국장, 김윤경 국제금융국장, 우병렬 대외경제국장, 김병규 재산소비세정책관, 김완섭 재정성과심의관 등 9명이 선정됐다. 과장급에서는 강영규 재정전략과장, 강윤진 인사과장, 김영노 조세분석과장, 김진명 대외경제총괄과장, 민경설 국제금융과장, 손웅기 기획재정담당관, 오광만 운영지원과장, 이상윤 연구개발예산과장, 정창길 복권총괄과장, 정희갑 재정관리총괄과장 등 10명이 선정됐다. 최다득표자는 구윤철 예산실장과 김영노 조세분석과장이었다.

문제는 공식 발표되지 않은 '닮고 싶지 않는 상사'다. 김 부총리를 지목한 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부총리는 충청 출신에 이른바 '비주류 학맥'으로 부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스스로 '소통'을 강조할만큼 온화한 성격이다.

그런 그를 왜 부하직원들이 '닮고 싶지 않는 상사'로 거론했을까. 스스로 본인의 리더십을 냉정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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