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블라이 지음 / 오수원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만7000원(세트)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성차별 내용을 게재한 신문칼럼을 보고 격분한 한 여성. 엘리자베스는 '외로운 고아 소녀'라는 가명으로 신문사에 반박문을 보냈다. 신문사 편집장은 엘리자베스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기자로 채용해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을 준다.

그렇게 기자가 된 넬리 블라이는 2년 뒤 목숨을 건 취재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환자 학대로 악명 높은 정신병원에 10일 동안 잠입해 그 참혹한 실태를 폭로한 것이다.

"이가 딱딱 맞부딪치고, 새파랗게 질리고 팔다리에는 소름이 잔뜩 들었다. 갑자기 양동이 세통 분량의 찬물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눈, 코, 입, 귀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욕조에서 끌려 나올 무렵 내 몸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내가 실제로 정신이상자 같은 모습일 때가 있었다면 바로 이때였을 것이다. 나는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1887년 23세의 젊은 여자가 10일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기자가 잠입한 것이다. 정신병자들이 '수용'돼 있는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 '학대대접'을 받은 기자는 그 경험을 세상에 폭로한다. 이 특종 보도로 정신질환자 복지 예산이 대폭 증액되고 이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후 넬리 블라이는 신문왕 퓰리처가 운영하는 '뉴욕 월드'의 정식 기자가 된다. 1년 뒤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고민하던 그녀는 대담한 기획을 생각해 낸다.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주인공보다 더 빨리 세계 일주를 완주하는 계획이었다.

신문사 측도 비슷한 기획을 검토했지만, 여자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여자라서 보호자가 필요해요. 혼자 여행할 수 있다고 해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빨리 이동하기가 힘들겁니다. 게다가 영어밖에 못하잖아요. 이 일은 남자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편견에 쉽게 물러설 넬리 블라이가 아니었다.

"좋아요. 남자를 보내 보세요. 그럼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를 이기고 말테니까요."

결국 25세의 넬리 플라이는 4만5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72일 만에 완주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여자 기자는 주로 패션이나 요리 같은 한정된 분야의 기사를 쓰던 시절에 이룬 성취여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넬리 블라이 이름을 딴 상품과 호텔 등이 생겨날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넬리 블라이는 30세에 사업가와 결혼해 10년이 지난 뒤 남편이 죽자 직원 1500명에 달하는 철강 회사를 운영하면서 강철 배럴통을 개발한다. 세계1차대전 때는 50세의 나이로 여자로서 유일하게 종군기자로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55세 때 미국으로 귀국해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고아들의 대모 역할을 자처했다. 입양을 주선하는 사회사업을 했다. 1922년 1월 마지막 칼럼을 쓰고 남은 재산은 고아들을 돌보는 데 쓰게 한 뒤 숨을 거둔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72일' 2권의 책에는 탐사보도의 전형이 된 잠입 취재기와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시대의 아이콘이 된 저자의 일대기가 수록됐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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