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식재료 차액지원으로 학교 무상급식 물꼬

자투리땅 농사에 양봉까지 … 자원순환농업 확대

"주민이 주도하고 공공은 지원" 지속가능성 고민

"전에는 가락시장에 팔았어요. 지금은 싱싱드림이나 학교급식에 납품을 해요. 아침에 작업을 하면 낮에는 내보내는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친환경 농산물을 시중보다 20~30% 싸게 구입할 수 있고 농가도 유통단계가 줄어드니 그만큼 이익이죠."

서울 강동구가 지역 내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주민들 방문이 빈번한 구청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무인판매대를 열었다. 사진 강동구 제공

서울 강동구 강일동에서 채소와 열매류 농사를 짓는 박종태(57)씨. 아침마다 30여가지 농산물을 수확해 찾는 곳은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 아니라 고덕동 친환경농산물 직매장 '싱싱드림'과 지역 내 초·중·고교다. 박씨는 "주민·아이들 먹거리 안전을 위해 20여 농가와 함께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라며 "곧 유럽이나 일본처럼 농약을 안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종태씨처럼 '큰 손'은 아니더라도 강동구에서 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만 3만여명, 텃밭은 16만㎡에 달한다. 몇몇 시민단체 용어로만 인식되던 도시농업을 행정영역에서 제도화, 자투리땅 농사부터 도시양봉 자원순환농업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

'1가구 1텃밭' 눈앞에 = 출발은 먹거리였다. 광우병 논란과 중국산 멜라닌 분유 파동에 더해 학교급식을 둘러싼 비리와 싸구려 식자재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잇달았다. 학부모들은 불안과 불만을 토로했고 구는 친환경 식자재를 지원할 방안을 고민했다.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이 쟁점으로 부각되기 전 2008년 일이다.

친환경 식자재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점을 감안, 일반 급식과 친환경 급식 차액을 지원하는 방안을 택했다. 재정형편상 5개 초등학교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했는데 학부모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단계적 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도록 생산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해식 구청장은 "견학을 갔는데 부모들이 더 좋아했다"며 "아이들 먹거리를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웬 농사냐"는 빈축도 나왔고 공무원마저 낯선 개념에 주저했다. 한강변 하천부지며 규모 있는 국·시유지를 텃밭부지로 주목하면 '적절치 않다'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 1년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0년 봄 둔촌동 그린벨트 내 개인토지를 빌려 첫 공공텃밭을 조성할 수 있었다. 법적 근거가 될 조례안을 마련했더니 이번에는 의회에서 "개발부지도 부족하다"고 반발했다. 환경을 중심으로 한 미래 도시가치를 역설하고 친환경 정책을 펼치면서 첨단기업을 유치한 세계 선진도시 사례를 들며 설득에 나섰고 결국 구의회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도시텃밭 226구좌가 분양신청을 시작한지 5분만에 매진될 정도로 주민들 반응이 좋았다. 텃밭은 2011년 800구좌에서 2012년 2300구좌, 2014년 5300구좌로 지속적으로 확대됐고 지난해 7600구좌로 늘었다. 2020년이면 1만구좌까지 확보, '1가구 1텃밭'이 현실화된다. 정부도 2011년 도시농업 육성·지원법을 제정했고 이듬해부터 서울시와 각 자치구도 법령을 근거로 유사한 조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서울 농부 육성에 나섰다.

도농상생 공공급식 실험 중 = 친환경 도시농업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또다른 방법은 유통단계 줄이기. 고덕동 싱싱드림과 구청에 마련한 무인판매대가 대표적이다. 2013년 문을 연 싱싱드림은 등록 회원만 9868명. 강동구와 인근 경기도 양평 이천에서 생산한 가공물품까지 한해 3억8000여만원 어치가 거래된다. 지난해 말에는 주민들 방문이 더 잦은 구청에 로컬푸드 무인판매대를 설치, 유통마진을 없앴다. 지역 내 244개 학교와 보육시설 10곳에도 강동산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공급한다.

지난해 5월에는 전북 완주군과 1대 1 계약을 맺고 산지에서 직송한 식재료를 107개 어린이집과 복지지설 지역아동센터 등에 공급하고 있다. 구는 "5~7단계 유통구조를 직거래 방식으로 개선하고 생산·유통·소비단계에서 안정성 검사를 실시,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적정가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며 "진정한 도농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농사에는 지속가능성을 더했다. 농사 범주는 양봉까지 확대됐다. 낙엽과 음식물쓰레기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해 퇴비로 만들어 농가와 텃밭에 공급한다. 지렁이를 활용한 퇴비나, 거름을 활용한 밭 등 토종 농법에도 주목하고 있다. 6월 강일동에 자원순환 시설이 집약된 생태순환 퇴비공원이 들어서면 선순환 도시농업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앞선 경험만큼 강동구 도시농업은 뿌리를 보다 튼튼히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생산농가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이 법인설립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해식 구청장은 "도시농부나 협동조합 등 주민이 주도하고 공공은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활동가 역량을 키우고 공공의 지원과 기업의 사회공헌이 더해질 수 있도록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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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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