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 있는 상봉신청자 85%가 70대 이상

매년 7천명씩 상봉해야 단 한번이라도 만나

벼가 노랗게 익은 벌판이 펼쳐졌던 고향 황해도 연백. 고향이 참 살기 좋았다는 옥선봉(87) 할머니는 어느 겨울밤 6살 큰아들 석우에게 "곧 돌아오마"하고는 피란길에 올랐다.

여보 잘 가시게…│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남북으로 갈려 수십년 헤어졌던 부부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 공동취재단·연합뉴스


치맛자락을 붙들며 같이 가겠다고 떼쓰는 석우를 두고 작은아들만 업고 남쪽으로 왔다. 돌아갈 길이 막힌 채 세월이 흘렀고, 이제 석우는 70대가 됐다. 옥 할머니는 그 때 일을 설명할 때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다. 옥 할머니의 증손녀 김민희씨가 할머니의 편지를 대신 낭독한다. "사랑하는 아들 석우야, 보고 싶구나. 나는 남한에 와서 잘 사는데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나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

대한적십자사가 2013년 제작한 옥 할머니의 10분 분량 영상편지에 담긴 장면이다. 통일부와 적십자사가 2005년부터 신청을 받아 제작한 이산가족 영상편지는 1만9541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에 전달된 영상편지는 2008년 20편뿐이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시기 고향을 등지고 남으로 내려온 이산가족들이 실향과 이산의 아픔으로 견뎌온 세월이 어느덧 73년이 됐다.

이산가족 1세대는 85%가 70대 이상의 나이가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어가고 있다.

통일부와 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남북이산가족 상봉신청자 중 이미 55%가 세상을 떴다.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88년부터 누적된 등록 인원은 총 13만1344명이며, 지금까지 사망자는 7만2307명이다. 2017년 12월 한달에만 184명이 사망하면서 생존자 수는 5만9037명에 불과하다.


현재 상봉신청 생존자 중 90세 이상이 18.9%(1만1183명)이며, 80~89세가 42.8%(2만5266명), 70~79세가 23.3%(1만3761명)일 정도로 초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남성(3만6740명)이 62.2%로 여성(2만2297명·37.8%)보다 두배 가까이 많다.

그러나 정부 주관으로 21차례의 상봉을 통해 북의 이산가족을 만난 경우는 4185건에 불과하다. 전체 신청자(13만1344명)의 단 3.2%뿐이다. 한차례 상봉 때 자리를 함께한 남쪽 가족을 포함해도 북의 이산가족을 만난 사람은 1만9928명으로 전체 신청자의 11.6%에 그친다. 그나마 2015년 10월이 마지막이었다.

당국차원의 서신교환·화상상봉도 진행됐으나 서신교환(남북 총 679명)은 2003년, 화상상봉(남북 총 3748명)은 2007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은 남북을 합쳐 5만 7567명뿐이다.

문제는 살아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의 생애 내 상봉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체 상봉신청자(13만1344명) 중 사망한 7만2307명 가운데, 90세 이상(1만5461명)이 21.4%, 80~89세(3만2990명)이 45.6%, 70~79세(1만8554명)이 25.7%로 무려 92.7%를 차지한다. 11년 전인 2007년에는 이 비율이 30.3%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펴낸 보고서 '이상가족 상봉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이산가족 사망자 수는 연간 평균 3800명에 이른다. 이중 상봉 기회를 갖지 못하고 눈을 감는 이가 연간 2400명 수준이다.

보고서는 "2015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을 감안하면 25년 뒤쯤에는 이산가족 상당수가 유명을 달리할 수 있다"며 "현재 모든 이산가족 생존자들이 생애 단 한번이라도 북한 가족과 상봉하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상봉 인원을 73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 70세 이상인 고령자의 경우 매년 6900명 이상에게 상봉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정치·군사적 상황과 별개로 우선 추진한다는 방침임을 거듭 밝혀왔고, 북측에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제안을 했으나, 북미 갈등이 급속하게 고조되면서 운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은 그간의 상황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고위급회담 등 남북대화가 전격 재개되고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적극 참여하면서 향후 남북간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될 조짐이다. 평창 이후 북미대립이 가장 큰 변수이지만, 최근 미국 정부의 움직임은 북미간 초보적 접촉과 탐색적 대화의 길이 열릴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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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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