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일자리 등 국내 정치상황 고려 압박 … 금융권 "정부 지원 끊기면 언제든 철수 가능"

정부가 한국GM의 지원 여부를 놓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협상을 벌일 예정이지만 '지역경제'를 우선 고려 대상으로 정해 놓고 있어 불리한 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폐쇄 확정 군산 GM 공장│13일 오전 폐쇄가 결정된 제네럴모터스(GM) 전북 군산 공장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13일 정부는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개최한 관계기관 회의에서 "일자리와 지역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한국GM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GM측과 지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공식적으로 명시했다는 것은 공장폐쇄 등 한국GM의 철수를 최대한 막겠다는 의미다. GM은 한국GM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한국 내 공장들을 폐쇄하고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사실상 밝혔다. GM은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지만 정부는 '폐쇄를 감내할 수 있다'는 배수진을 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한 것은 가동률이 20%에 불과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추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이 동시에 작용된 측면이 있다.

배리 엥글 미국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7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3조원 가량의 유상증자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17%의 지분을 보유한 산은에서 5000억원 가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GM에 대해 제대로 된 실사조차 해보지 못한 산은이 미국GM의 투자 계획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최소 5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GM의 이 같은 압박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업계와 금융권의 관측이다. 다만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데드라인을 2월'로 정해서 압박에 나선 것은 다분히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이후 기업 구조조정은 금융의 논리로만 보지 말고 산업과 국가경제적인 측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겠다는 원칙이 세워졌다"며 "현 정권에서 일자리 문제가 핵심이라는 것을 GM측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상의 마감시한을 2월로 국한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GM에 대한 정확한 실사가 선행돼야 지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전문가들은 산은의 지원이 불가피하더라도 미국GM의 장기적인 지원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자동차산업의 흐름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한국GM의 구조를 대폭 개편하는 방향으로 가져가지 않는 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구조조정전문가는 "한국GM에 대한 단기적인 지원 계획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공장을 운영하려는 시간끌기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도 한국GM의 운명이 호주 등 다른 국가들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GM호주법인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정부로부터 약 21억달러(약 2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았지만 이후 지원이 끊기자 철수를 결정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3일 "GM이 아직 구체적인 투자 금액이나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며 "정확하게 (계획을) 가지고 와서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백 장관은 GM의 신규 투자 의지가 있으면 정부가 지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규 투자의 규모나 기간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함부로 (GM이) 이렇게 하면 (정부가) 이렇게 한다고 커미트(약속)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재부와 산업부, 금융위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처간 입장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자료에 공식적으로 '일자리와 지역경제 감안'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지역 민심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군산공장이 폐쇄되면 2000여명 가량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협력업체를 포함할 경우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경기 이재호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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