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실세들과 다른 상대적 '보수성'으로 균형자적 입지 다져

대통령 인정받았지만, 부처 내에서 '위만 쳐다본다' 불만도

"대통령 임기 2년차가 되면 국민 기대치는 커지고 평가는 냉정해진다. 장관들도 업무 파악이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덩달아서 엇박자가 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가상화폐 규제 논란과 동계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놓고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리는 등) 최근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장차관들이 겸허한 자세로 솔선수범해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논의된 핵심내용이다. 이른바 집권 2년차(또는 3년차) 증후군에 대한 셀프 경고인 셈이다. 대통령 임기 2~3년차가 되면 내부적으로 국정운영 경험도 쌓이고, 자신감도 붙는다. 몇 차례 인사를 거치면서 부처장악력도 커진다. 하지만 그 지나친 자신감과 허니문 기간을 끝낸 국민들의 냉정한 시각이 맞물리면 거꾸로 '국정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게 '2년차 증후군'의 본질이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임기 2년차 시험대'에 올라 있다.

누구도 예측 못한 '발탁 인사' = 문재인정부의 출범은 과거 정권교체와는 차원이 달랐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맞선 국민들의 촛불항쟁을 계승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정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 점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발탁은 '의외의 조각'이었다. 그는 국정개혁과는 거리가 먼 행정고시 출신의 관료였다. 더구나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재부 예산실장,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쳤다. '적폐 공무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사령탑"이라며 발탁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김 부총리는 대표적 흙수저 출신으로 엘리트주의가 강한 기재부에서 핵심보직에 오른 입지적전 인물이다. 덕수상고와 국제대를 입법고시(6회)와 행정고시(26회)에 합격했다. 문 대통령은 그에게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다.

고난의 임기 1년차 = 하지만 김 부총리의 임기 첫해는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타워'로 서기 위한 '고난의 1년차'였다. 정권출범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던 그는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여권 내부로부터 수차례 견제를 받았다. 여당 지도부와의 부자증세와 보유세 논쟁이 대표적이다.

증세문제만 하더라도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버티다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더니 결국 슈퍼리치 증세안을 내놨다. 이 때문에 그는 경제정책을 놓고 수시로 말을 바꾼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락가락 부총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연말쯤에서야 김 부총리는 여권내부에서 실질적 경제컨트롤타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가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경제정책 투톱으로 자리 잡았다. 12월부터는 매월 대통령에게 경제정책 독대보고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언급도 하고 있다. 임기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대선공약이었다. 그만큼 대통령 신임이 두터워졌다는 말이다.

정권핵심과 보완관계? = 김 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그의 '균형자적 역할'이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핵심라인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홍장표 경제수석-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모두 개혁적 색채가 강한 교수 출신이다. 경제정책에서도 소득주도성장론과 재벌개혁론을 내세운다. 반면 관료 출신의 김 부총리는 상대적 보수 성향일 수밖에 없다. 실제 보유세나 부자증세를 놓고 여권 핵심부가 목소리를 높일 때 그는 '세금 문제는 신중하게'를 거듭 강조했다. 재벌개혁과 소득주도성장론이 강조될 때는 '재벌도 경제의 한 축'이라거나 '혁신성장'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정권출범에 역할을 못한 김 부총리가 비교적 빠르게 입지를 구축한 것은 균형자적인 역할과 메시지를 통해 안정적 국정운영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만만찮은 2년차 과제 = 지난해에는 세계경제 회복세와 함께 반도체 경기 활황으로 3%대 성장을 찍었다.

하지만 2018년 사정은 사뭇 다르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노골화하며 우리 수출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발 금리인상도 가계경제의 근간을 흔들 시한폭탄이다. 미국 자동차회사인 GM의 군산공장 폐쇄도 돌발 악재로 등장했다.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등의 구조조정 문제도 해묵은 난제다. 2년차 김 부총리가 써내야 할 경제성적표의 여건 자체가 안갯속인 셈이다.

김 부총리의 리더십도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청와대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김 부총리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제정책 안정화에 도움을 줬던 김 부총리의 '상대적 보수성'과 '신중모드'가 2년차에는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안방인 기재부 내에서도 '김동연 리더십'에 대한 불평이 커지고 있다. 과거정부의 관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이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안일한 부처대응을 지적하자 곧바로 기재부 간부들로 TF를 구성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면밀한 분석 없이 '대통령 지적사항 신속대처'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형식적 회의체만 하나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결정적 시기에는 하향식 방식을 내려먹이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지난 1월부터 직원들과 상의 없이 국실별로 '셧다운' 휴무를 실시한 것이 상징적이다. 자신의 연차를 쓰면서도 개인일정과 무관하게 '강제 무급휴가'를 써야 해 젊은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최근 설 명절을 앞두고 공무원 복지포인트로 온누리상품권을 강매토록 한 과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행안부 차원의 결정이지만 경제부총리 자격으로 '과정의 일방성' 문제는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연 부총리 '2년차 시험대' 오르다' 연재기사]
① 위기의 리더십│ 소통 강조했지만 '관료주의' 한계 드러나 2018-02-19
② 경제 성적표는?│ 미국 보호무역주의, 우리 수출산업 정조준 2018-02-21
③ 예측 어려운 정치상황│ 역대 부총리, 집권중반 국정쇄신 표적됐다 2018-02-22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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