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에릭 쥐세, 미국 핵전략 분석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초 매우 공격적인 '핵태세 검토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재래식 비핵공격의 대상이 되면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적으로부터 핵 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먼저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대상은 러시아와 중국, 북한과 이란이었다.

이같은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전략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미국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에릭 쥐세가 지적했다. 그는 제3차 세계대전이 단지 상상속에만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쥐세는 2006년 세계 최고의 명망을 자랑하는 미 외교학계가 공개한 2개의 논문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미 외교협회가 출간하는 포린어페어스지의 '핵우위 개념의 부상'(The Rise of U.S. Nuclear Primacy), 다른 하나는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벨퍼센터'가 공개한 '상호확증파괴의 종말?'(The End of MAD)이다. MAD는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준말이다.

쥐세는 "2개 논문의 핵심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최극단의 군사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우위'(Nuclear Primacy)는 1950년대 수립된 핵전략 패러다임, 즉 '상호확증파괴'(MAD)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MAD는 핵무기를 방어목적으로 설정한다. 핵을 사용할 경우 공멸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준다는 개념이었다. 이는 실제 공격에서 핵무기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그같은 의미의 MAD가 핵우위로 대체됐다. 이제 핵무기는 타국의 핵공격을 막아주는 것뿐 아니라 타국, 즉 주요 적국인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벌여 이기게 해주는 무기로 설정됐다. 그같은 전략에서 미국은 핵 선제공격을 통해 러시아를 굴복시키고 파괴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가 핵무기로 반격한다 해도 미국은 방어망을 통해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극히 적은 사상자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탄도요격미사일(ABM) 또는 탄도미사일방어(BMD)다. 핵우위 패러다임의 목표는 미국이 세계 최대 영토의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쥐세는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미국이 일찌기 가정한 그같은 방어전략 무기는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꾸며낸 허구임이 확실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같은 무기를 개발해 판매한다고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려는 군산복합체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일찌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스타워즈' 프로그램을 공표했다. 이는 당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미사일 공격 위협에 대항해 만든 우주 기반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때부터 현재까지 MAD 위험을 실질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쥐세의 분석이다. 단시 선전선동만 요란했다는 것.

1991년 소련은 물론이고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공산권 블록인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붕괴됐다. 미 군산복합체는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막대한 이문이 남는 무기시장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 냉전의 종말은 제품을 계속 팔아 시장가치를 올려야 할 미 군수업체들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미 군수업체를 운영하는 억만장자들은 의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이끄는 기업의 최대 시장은 바로 미국 행정부다.

MAD에서 핵우위로의 전략 변경은 냉전을 은밀히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다. MAD 전략은 미소 양국의 핵무기 균형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컸기 때문에 수요공급이 정치적으로 조절됐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핵우위 전략에서는 그같은 제한을 풀어버릴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무기제조업은 극소수 억만장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투자 분야다. 정부가 전투기와 폭탄, 미사일을 구매하는 한 무기제조 기업들의 부는 계속 증가한다. 특히 복잡한 첨단무기, 특히 핵무기와 같은 전략무기라면 지구상 그 어떤 제품보다 이문을 많이 남길 수 있다. 가격을 불문하고 팔리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1월 이임사에서 "군산복합체는 전 세계의 암적 존재"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미국 쇠락의 주 요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부시가 취임하던 2001년, 이제 '냉전'이라는 말은 미 국민들을 흥분시키지 못하는 흘러간 옛노래였다. 소련과 공산주의, 그 동맹들이 오래 전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제시할 새로운 '악마'가 필요했다. 국방예산 확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하늘의 도움인지 9/11 테러사건이 터졌다. 알카에다와 급진 이슬람 테러리스트 조직이 미국의 적이 됐다.

하지만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이는 군침을 흘릴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전략 핵무기를 위한 막대한 예산은 핵으로 위협하는 강대국 수준의 적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2006년 세계에서 명망을 인정받는 외교학계 2곳에서 'MAD의 종말'과 '핵우위 패러다임의 등장'을 선언했다.

군산복합체에게 이는 하늘이 준 선물과 같았다. 핵우위 개념은 먼저 적을 재정의했다. 이제 적이란 상호확증파괴 두려움으로 함께 평화를 유지해야 할 상대가 아니다. 적이란 완전히 제압해야 할 국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둘째, MAD에서 핵우위 패러다임으로 가기 위해 대중에 대한 거짓말이 필요했다. 바로 탄도요격미사일(ABM)은 공격기능이 없고 순전한 방어기능만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속임수에 대중들은 수조달러의 국민세금을 기꺼이 쓰도록 허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한 지난해 상반기부터 '핵공격에도 끄떡없는 초호화 지하벙커가 미국과 유럽의 억만장자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지하벙커를 구매한 사람들의 정체가 어떤지에 대해 공개된 바는 없다. 하지만 쥐세는 "논리적 추정은 가능하다. 일단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핵전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아낌없이 지불할 정도로 전쟁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적 신앙에 기반해 임무를 수행했다. 부시는 정부가 ABM 무기를 주문하고 구매하기 전 시험발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겼다. 달리 말하면 부시는 첨단무기가 작동할지 여부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군수업체 오너들이 무기를 제조해 판매하면서 이득을 얻는 것에 만족하느냐 여부가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했다. 부시는 ABM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 MAD를 핵우위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바탕이 됐다.

핵우위 개념은 미국의 ABM 시스템이 적의 보복 핵공격을 격파할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부시는 시스템이 실제 작동하는지 여부를 살피지 않았다. 포린어페어스지와 하버드대에서 관련 논문이 나오기도 전에 부시는 방어시스템을 밀어붙였다. 부시의 그같은 계획을 성급히 실행하는 데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핵우위 개념 자체를 비판한 주요 학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신앙에 기반해 업무를 수행하는 부시 대통령을 경멸했다. 현재 세속적 처세술에 의존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학계와 전문가들의 무시를 받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 내 전문가를 영입하려 해도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부시 대통령도 그랬다. 2004년 10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수행한 경제학계 전문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부시 내각에서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오면 '싫다'고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 밑에서 일하고 싶은가'라는 이어진 질문에 부시와 대선 맞상대였던 존 케리라는 응답이 81%였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대한 언론들의 잇따른 비판에도 부시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NYT)의 과학전문 기자인 윌리엄 브로드는 2003년 9월 24일자에서 "미사일 방어전략 추진에 위험요소가 많다는 보고서가 있다"며 "부시 정부는 미사일 방어에 현재까지 220억달러를 들였고, 내년에는 예기치않게 더 큰 예산이 들어갈 수 있다"며 "또 의회 산하기구인 미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적의 핵탄두를 막지 못하는 기술적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NYT는 GAO가 펴낸 40쪽 보고서를 인용해 "국방부는 10개의 핵심 기술이 집약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중이지만, 그 시스템이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하고 있다"며 "똑같은 일이 초고가 차세대 전투기인 F35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국방부의 시도는 총알로 총알을 쏘아 맞추는 일에 비견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NYT는 국방부에서 무기실험 책임자를 지낸 인물의 발언을 인용해 "탄도요격미사일 시스템을 계획에 맞춰 1년 내 배치한다는 건 실제 방어막이 아니라 '허수아비'(scarecrow)를 세운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말하면 실제적 쓰임새가 전혀 없는 실패작이라는 말이었다. 그같은 시스템을 이루는 많은 부품들이 적절히 기능하고 있는지 알기 위한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NYT는 또 "전임 빌 클린턴 정부는 그같은 우려에 대해 보다 귀를 기울였고, 복잡한 방어 시스템의 다양한 부품, 구성요소들에 대한 실험을 위해 넉넉한 시간표를 제공했다"며 "하지만 부시가 취임한 이후 첫 조치는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즉각 배치하는 것이었다.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먼저 배치하고 난 뒤 시험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부시는 과학이 방어시스템의 기능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다면, 신이 그런 기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미국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은총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2004년 4월 26일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위협이 실재하는지 의심스럽지만, 국방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부시는 세관과 국경보호에 쓰는 비용의 2배 이상을 미사일 방어에 쓰려 한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초보 수준의 불확실한 방어망을 얻는 데 그쳤다. 러시아가 쏠지도 불분명한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9/11 이후 국가방어전략이 전환돼야 하는 데도 부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시는 몽니를 부렸다. 2005년 2월 14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초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3번 연속 시험발사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한 과학자를 인용해 "헨리 포드가 자동자 생산라인을 만든 뒤 시험주행도 거치지 않고 자동차를 판매하는 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4일 AP통신은 "의회가 초보 수준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얼마가 투자될지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어시스템은 계속 실패했고, 관련 비용은 부시 행정부가 애초 추산한 비용 1500억달러를 쉽사리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어시스템에 찬성하는 일부 의원들은 "9/11사건처럼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은 배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같은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9/11은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있었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들이 이를 몰랐을까. 에릭 쥐세는 "의원들은 훤히 알고 있었다"며 "일부 의원들의 그같은 주장은 군수제품을 생산하는 록히드마틴 등의 후원 하에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발언함으로써 의원들은 기업으로부터 넉넉한 후원금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레이건에서 시작돼 부시가 제조하고 구매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은 오바마가 실제 배치했고, 현재 트럼프 대통령까지 이어지고 있다. 쥐세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이라는 도박이 실패한 것은 매우 명확해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성공은 결코 군산복합체의 실제 목적이 아니었다. 정부가 국방예산을 계속 늘리도록 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은 당초 목적을 완벽히 수행했다. 바로 정부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극소수 억만장자들이 운영하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복무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영원한 악마' 러시아가 필요하다" 로 이어짐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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