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국립수목원장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에게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혹은 '정원일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이 있다. 옮겨가는 곳마다 정원을 가꾸었다는 헤세가 정원을 돌보면서 느낀 생각들을 담았다.

조금은 어렵고 어둡다고 생각되었던 그의 소설들과는 달리 그가 정원에서 느꼈던 계절, 자연과 삶에 대한 생각들이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과 함께 평화롭고 잔잔하게 담겨 있어서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꽃잎처럼 생각처럼 피어난다"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불완전한 것까지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된다"란 대목들을 읽다 보면, 그는 단순히 힘겨운 세상과 삶에 대한 도피뿐 아니라 식물과 만나는 정원일 속에서 위로와 치유와 용기를 찾아내고 있지 않나 싶다.

정원일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미래 산업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하나의 계기로, 몇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열풍처럼 불러온 '정원' 바람을 보면 콘크리트 도시, 경쟁과 갈등이 가득한 일상의 속에서 많은 국민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삶의 바람들이 읽혀지는 듯 싶다. 이러한 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됐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텃밭정원, 가든쇼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나 사업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원디자이너 혹은 가드너로 자신을 소개하는 분들도 제법 많이 만나게 된다.

정원일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고 삶의 공간들을 아름답게 하는 미래 산업이 틀림없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정원사업들은 매우 반갑지만, 그 속도와 방향이 다소 치우쳐져 있어서 걱정도 된다. 행여 유행처럼 붐이 있었다가 사라질까 싶어서다. 정원이 공원과 다른 점은, 조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며 풀과 나무들을 성장과 계절과 환경에 따라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가는 과정이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정원일은 집이나 공공의 장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 혹은 개인의 삶의 색깔을 완전하게 바꾸어내는 참으로 멋진 공간인 동시에 시간이다.

작게는 손바닥정원에서 크게는 도시재생정원이나 숲정원까지, 개인을 위한 정원에서 학교정원, 회사정원, 마을골목길정원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정원 디자이너들은 정원을 설계와 조성으로 시작은 해줄 수 있어도 진짜 정원이야기는 그 다음부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비용들 들여 정원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잡초밭처럼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정원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공간 정보, 소재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기반이 필요하며, 그에 앞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국식물 일색인 정원에서 우리 식물을 만나게 하려면, 우리의 야생화 가운데 적절한 식물을 찾아내고, 좋은 유전적 특성을 가진 개체들을 선발하고, 농가에서 누구나 쉽게 생산해낼 수 있는 재배기술도 표준화시키는 연구가 필요하다.

아이들 위한 학교정원, 교육프로그램과 함께 연구를

세계 곳곳에 일본정원이나 중국정원은 있어도 한국정원을 만나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다. 기후도 풍토도 사는 식물도 다른 그곳에 어떻게 우리정원의 요소를 반영하여 한국정원을 만들어야 할지 연구도 필요하다. 아이들을 위한 학교정원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것을 가꾸고 관찰해야 하는지 교육프로그램도 같이 연구되어야 한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첼시플라워쇼에서 수상한 한국작가의 정원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정원을 컨트롤하는 첨단 분야와의 접목이 요구되기도 한다.

정원연구를 위한 예산이나 인력의 확보는 참으로 어렵다, 정원은 극소수의 부유한 이들의 공간이라는 선입견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가능성 많은 정원산업이 잘 발전하여, 헤세에게 그랬듯이 많은 국민들에 위로와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좀 더 깊은 이해와 구체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