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토바대 역사학 교수 "노동자 노조가입 늘고 사회주의자 자처 많아"

"베트남전부터 이어지는 미국의 모순과 분열" 에서 이어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건 미국 내 자유주의적 질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신호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패배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물론 현재까지는 계급, 인종적 갈등을 가까스로 봉합하고 있기는 하다.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역사학 교수인 헨리 헬러는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을 고려하면 미국의 사회 경제적 문제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커지고 계급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탄압으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경찰의 군대화, 감옥산업의 성장, 정부 감시와 검열의 심화 등의 상황전개가 이뤄지고 있다. 미 오리곤대 사회학 교수인 존 벨라미 포스터 교수는 2017년 4월 '먼슬리 리뷰'에 게재한 논문 '백악관의 신파시즘'에서 "이미 미국은 대규모 저소득 중산층으로 구성된 '신파시즘 국가'로 분류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는 △경제적 위기 도래 △점증하는 계급 갈등 △스스로 개혁할 수 없고 개혁하려 하지 않는 지배층 △탈진한 자유주의적 지식인 △소외된 젊은 세대 △적의를 품은 인종적 민족적 소수 △좌절하고 가난한 노동계급 등이다. 헬러 교수는 "미국 내부는 정치적 위기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며 "예상할 수 있는 결과 중 하나는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계급과 인종 갈등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가마솥과 같다. 군사적 모험주의를 시도하다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총체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과거처럼 워싱턴 정치권이 깃발을 꽂으면 국민들이 일제히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때는 지났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때처럼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같은 내적 분열의 결과가 미국 내 혁명까지는 아니라 해도 제국의 관리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내적 혼란에 빠진 미국은 제국의 다른 지역,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혁명적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것이다. 헬러 교수는 "미국이 전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국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제 글로벌 지정학 분석의 중심 문제는 '미국 내 혁명적 변화 가능성' 또는 '내적 투쟁 가능성'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과 미국에서 반세기 전 일어났던 일은 현재를 말해줄 수 있다. 디엠 총통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제국주의와 인종차별, 냉전을 빌미로 한 탄압에 반대하는 대규모 사회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저항의 흐름은 페미니즘과 동성애 자유화, 이주민의 저항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한 정체정 정치로 녹아들었다가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주제의 사회운동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운동을 촉발한 이슈가 여전히 현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은 최고조에 달했다. 노골적이며 강력하다. 게다가 미국 내에서 흑인과 라틴계 이주민들, 기타 소수인종에 대한 공격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정부의 감시와 검열은 만연하고 정치적 억압과 투옥율은 높아지고 있다.

상황은 이렇지만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정치권은 파산한 것처럼 무능력하다. 오히려 불신의 아이콘이 됐다. 자유주의적인 학계와 정부 엘리트들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 시기보다 오늘날 문제점이 더욱 깊어졌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다소나마 완화됐다. 게다가 일자리의 질은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다. 당시는 전후 경제의 최정점이었다. 반면 오늘날엔 부채 비율과 청년 실업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청년실업이 그렇다.

이런 상황의 결과는 노동자의 계급적 의식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 아니라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자와 부자 사이에 반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헬러 교수는 "젊은이를 포함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며 "젊은이들 상당수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정치적 격변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눈송이가 눈덩이로 커지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헬러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난폭하고 비헌법적 행동들은 사회정치적 격변을 낳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만약 또 다른 국제전쟁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돌려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면, 이 역시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 위에 문제가 쌓이고, 갈등 위에 갈등이 보태지면 향후 불확정 시점에 현재 자본주의 질서의 시스템 위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기 전, 각 지층들이 겹쳐지면서 압력을 높이는 과정이 선행되는 것과 같다. 헬러 교수는 "경제적 위기 고조나 국제전쟁의 발발 가능성, 글로벌 혁명 또는 환경적 재앙 등 단순한 맥락으로 끊어 이해돼선 안된다"며 "그 요소들이 모두 중첩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적절한 비유가 있다면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대공황이 동시에 벌어져 폭발력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상황과 조건으로 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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