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4명 연달아 검찰조사 불명예 … '금융감독 공백기' 후폭풍 우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사퇴를 결심하면서 새롭게 시동을 걸었던 금감원의 업무 추진 동력이 다시 꺼지게 됐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근무 당시의 채용비리 의혹으로 사퇴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원장마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물러나면서 금감원은 갈 길을 잃었다.
금감원장 마지막 일정│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간담회에 참석한 것이 금감원장으로서는 마지막 일정이 됐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2016년 10월 로스쿨 변호사 채용비리가 터진 이후 1년 6개월 동안 금감원은 제대로 된 금융감독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일상적인 업무는 진행됐지만 적극적인 업무 수행이 사실상 어려웠다. 소위 '식물 금감원'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의 금감원 권한 축소와 맞물리면서 금감원 노조는 김 원장 취임 당시 "금감원의 검사기능이 '물검사'가 됐다"며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영업행위 점검의 받침돌인 검사기능은 내팽개치고 '금융 꿀팁' 같은 생색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기능회복을 강조했지만 금감원장 2명의 잇단 낙마로 금감원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하다.

김 원장은 자신의 정치후원금 5000만원을 민주당 의원모임인 '더좋은 미래'에 기부한 것과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위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이와함께 검찰 수사가 속도감 있게 이뤄지면서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로스쿨 변호사 채용비리 사건으로 최수현 전 금감원장이 검찰 수사(서울고검 재기수사)를 받고 있으며 진웅섭 전 금감원장도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채용비리 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금감원은 최근 원장을 지낸 4명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두 차례 채용비리 사건으로 문재인정부 들어 적폐 세력으로 몰린 것을 몰락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정권 초기 금감원장 후보로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KAI 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갑작스럽게 바뀌면서 스텝이 꼬였다는 분석도 있다. 세간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금융전문성이 없다며 김 전 사무총장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흥식 전 원장은 취임 후 금감원 조직 개편과 임원 전원 교체 등 인사를 단행했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채용비리를 조사해온 금감원의 수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되면서 취임 6개월만에 낙마했다.

김기식 원장은 취임 이후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수습에 나섰고 신한금융의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신속한 조사를 지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지만 불과 15일 만에 옷을 벗게 됐다. 금감원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해보기도 전에 또 다시 수장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며 "로스쿨 채용비리 이후 사실상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부서장들은 원장 취임 이후 새롭게 추진할 과제들을 그동안 준비했지만 다시 캐비닛에 넣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금감원의 조직 안정성이 흔들리면 금융감독 전반에 공백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다음 원장은 강화된 인사검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취임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이 소홀해지면 대형 금융사고의 발생 여지가 커지는 등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하반기 이후 부실기업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금감원의 선제적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지만 그동안 정부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있었고 금감원장 부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최 전 원장과 김 원장이 강조해온 '금융소비자 보호' 추진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들이 겪는 상실감이 크지만 그것 보다는 금감원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안타깝다"며 "사퇴한 원장 2명 모두 금감원에 있을 때 발생한 일로 물러나는 게 아니어서 금감원으로서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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