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마다 소모임 생겨

'성폭력 공론화' 앞장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르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단톡방 사건을 접하고 보니 이게 예전에도 있던 일이라는 것,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성차별적인 문화가 대학문화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펭귄프로젝트’를 하게 됐습니다.”

지난 3월 30일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펭귄들의 반란’ 집회에서 이명아 기획단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펭귄프로젝트 제공

지난해 3월부터 대학 내 반성폭력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펭귄 프로젝트’의 이명아(23) 기획단장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곳곳에서 터진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보며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 친구들과 소박하게 시작한 ‘펭귄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은 생각보다 컸다. 캠페인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 올린 글을 본 개인 후원자들은 애초 목표했던 100만원의 3배가 넘는 331만원을 모아 주었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각지에서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지난해 3월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 집회를 연 데 이어 올해는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집회를 개최했다. 지난 한해 동안에는 세미나와 강연, 영화상영회 등 대학 내 반성폭력과 평등문화를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펭귄프로젝트 모임에 참여한 후 자기가 다니는 대학에 페미니즘 소모임을 만드는 분들이 여러 분 있었어요. 아주대, 서울여대 등에 원래 페미니즘 동아리가 없었는데 생겼다고 알고 있고요. 저도 펭귄프로젝트 시작하면서 제가 다니고 있는 학과에 페미니즘 소모임을 만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소모임을 만들어 놓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계기가 되고 그 전에는 공론화되지 않던 성폭력문제가 조금씩이나마 공론화되기도 하는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펭귄일까?

“펭귄의 습성에서 나온 ‘퍼스트펭귄(first penguin)’과 ‘허들링(huddling)’에서 착안했어요. 펭귄들이 먹이를 찾으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물 밑에 천적이 있을 수 있으니까 머뭇거린대요. 그때 가장 먼저 물속에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고 해요. 또 '허들링(huddling)'이라는 건 암컷 펭귄이 먹이를 찾으러 간 사이에 수컷 펭귄들이 둥그렇게 모여 서서 추위와 천적으로부터 알과 스스로를 지킨대요. 대학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데 먼저 용기를 내어 바다로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이 필요하다고 봤고요.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서로서로 지지해주고 연대해야 한다고 본 거죠. 펭귄처럼요.”

거센 미투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고 ‘포스트 미투’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됐다. 펭귄프로젝트도 그동안 활동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고민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단장은 단순히 성폭력을 저지른 몇몇 가해자를 대학에서, 사회에서 골라내면 그만인 것처럼 미투가 끝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학 미투를 보면 가해자 교수를 해임하고 일단락해 버리는 식인데 그게 과연 다일까 싶어요. 가해자에게 제대로 징계를 내리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문화를 돌아보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부족하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집담회 행사를 5월중에 열 계획이에요. 미투가 권력형 성폭력 문제로만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성차별적인 문화들, 매일 만나는 동기나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미투의 의미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나눠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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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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