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참여와 혁신의 시대라고 한다. 정권교체 이후 정부의 각 부처에서 내놓는 정책자료나 보도자료에서 국민참여나 사회혁신이라는 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행정 현장의 경험을 겪은 후부터 '무엇이 혁신이고 참여인가'라는 고민이 든다. 하나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어떤 민관협의회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각종 지하도로 개발사업 중 하나가 인천에서 서울을 잇는 제물포길 지하화 사업이다. 지하화 노선은 불가피하게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기존의 거주지 지하나 그 근처를 지나게 된다. 발파나 공사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지하도로 운영에 따른 피해가 없을지 전전긍긍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공사를 진행하려는 시공사와 지역 주민들 간의 잦은 마찰이 있었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주민협의체다.

혁신 없는 주민협의체, 시민사회 없는 참여예산

하지만 지난 달로 2차례 진행했을 뿐인 주민협의체를 계속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이를테면 현재 진행 중인 발파 공사의 소음이나 진동 측정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청을 묵살했다. 공사 현장 방문 요청 역시 묵살했다. 시공사 측에서 주민들 요구를 간단히 거부할 때 배석했던 서울시 담당부서는 적극적인 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해당 사업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공사 중 뿐만 아니라 공사 이후에도 해당 시설물 운영에 따른 시민 감시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하자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주민 참여는 사업자 고집에 막히고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은 관례에 가로막혔다. 공공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서울시가 곳곳에서 주민협의체를 만들고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구태여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하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국민참여예산제 과정 역시 그렇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올해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으니 사업을 하는 것은 맞는데 그것을 진행하는 과정은 구태여 참여예산사업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진부한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국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사전에 검토하고 조정하는 각 사업부처 별 민관협의회 구성이 그렇다. 국민이 낸 사업에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유는 사업을 잘 걸러내라는 뜻이 아니라, 제안의 취지를 살펴서 가급적 집행이 될 수 있는 수준으로 꼴을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예산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이들로 구태여 교수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해당 의제에 활동해온 시민사회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국민참여예산제가 참조한 서울시 참여예산제는 그렇게 운영하고 있으니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막상 구성된 현황을 보니 온통 교수, 변호사, 연구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전문성이 높은 이들이니 만큼 참여예산의 취지를 살려 역할을 잘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태여 가장 익숙한 방식대로 전문가들을 구성했어야 했을까. 좀 더 사업을 제안한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참여예산다운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혁신 주체부터 혁신해야

참여와 혁신이 시대정신이기는 하나 여전히 구름 위에 머무를 뿐 구체적인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적절한 권한이 따라오지 않는 참여는 세련된 민원 창구에 불과하다. 비슷하게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혁신은 괜찮은 포장지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와 혁신은 국정과제 이전에 정부과제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참여와 혁신을 말하는 그 당사자부터 참여와 혁신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익히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변화 없는 '진보'가 죽은 말이 되었듯이 권한 없는 '참여'와 실험 없는 '혁신'이 죽은 말이 될까 걱정스럽다. 참여와 혁신을 말하는 곳이 먼저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을 고민했으면 한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