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의가 감사인 선정 … "비영리법인, 공적기관이 감사인 지정해야"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 대한 외부감사 과정에서 지난해 4만건의 개선권고가 이뤄졌지만 제대로 된 감사가 진행되면 더 큰 부실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아파트 회계감사 시장은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사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전락했으며 이대로 두면 감사 시장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가 23일 한국공인회계사회 세미나에서 아파트·학교법인 등을 비롯한 비영리법인에 대한 감사공영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23일 한국공인회계사회 주최 기자세미나에서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감사공영제를 통한 비영리법인의 투명성 강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아파트 감사 시장은 가격(감사보수)은 낮게, 감사는 대충하는 회계사가 득세하는 시장이 됐다"며 "우수한 회계사는 떠나고 열등한 회계사만 남는 죽어버린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1개 회계법인이 1년에 1049개의 아파트 감사를 수행한 사례를 들면서 외부감사인을 소개하는 전문브로커가 등장해 소개비가 감사보수를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문제는 감사인이 열심히 할수록 감사대상자들에게 불리하니까 느슨한 회계감사를 요구하는 역선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파트 외부감사는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장 등이 감사대상이지만 이들이 감사인을 선임하는 구조다. 감사보수는 입주민들의 관리비에서 나가고 투명성 향상에 따른 관리비절감 효과도 입주민이 받지만 감사인 선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정부 부처 외에는 견제장치 없어 = 주식회사 등 영리법인은 주주와 채권자, 감사위원회 등 감시장치가 있고 책임운영 주체도 분명하지만 아파트와 같은 비영리법인은 정부 부처의 감독 외에는 견제 장치가 없다. 내부통제 장치도 없다.

정 교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감사인을 선택하는 자유수임제로는 아파트 회계부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실감사가 만연할 수밖에 없고 회계감사결과가 입주자대표회의의 부실을 감춰주는 면죄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아파트 단지에 대한 비리 의혹이 제기됐을 때 브로커로부터 수령한 적정의견 감사보고서를 제시해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며 "현재의 아파트 감사보고서는 회계사들이 대충 살펴보고 적정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56개 아파트 단지의 감사업무를 수행한 회계사에 대해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조사를 벌인 결과 156개 단지 모두 부실감사로 적발된 사례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부실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주식회사에 도입된 '감사인 지정제'처럼 공적기관이 감사대상자를 정하는 감사공영제를 비영리법인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인 지정제는 상장법인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자인 지정제 도입을 주기적 지정제(6년 자유수임+3년 지정)로 제한한 것과 달리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전면 지정제 도입을 제안했다.

"아파트·사립대학·병원 등에 감사공영제 확대해야" = 현재 재건축·재개발조합에 한해서는 '도시 및 주거환경법'상 시·군·구청장이 감사인을 결정하고 직접 계약하는 감사공영제가 도입돼 있다.

정 교수는 감사공영제 적용대상을 300세대 이상 아파트(약 9000여개)뿐만 아니라 △사립대학 및 학교법인(약 324개 대학) △병원 및 의료법인(100병상 이상인 337개 병원) △상호금융조합 △공익법인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사회적 공익성이 높아 공익적인 회계감사의 필요성이 높은 분야"라고 강조했다.

감사공영제를 위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회계사로 감사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년 일정 시간 이상 전문교육을 이수한 회계사에 한해 감사단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 교수는 "감사공영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감사품질을 높여야 한다"며 "시간당 9.5% ~ 16.8%의 감사품질이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결국 감사시간이 감사품질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공영제로 인한 효익과 비용을 비교할 경우 감사보수가 세대당 3500원 증가하면 1만원의 관리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며 "보다 객관적인 측정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아파트 외벽의 페인트 공사만 놓고 봐도 어떤 등급의 페인트를 썼느냐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데, 제대로 된 감사없이는 관리비가 세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아파트는 국민 70%의 생활공간이라서 공공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만들어졌지만 회계감사는 이용자가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자유시장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아파트 회계 개선권고 작년 4만건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