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개선이냐

고사작전이냐

우리나라의 경우 건설사가 지역 언론을 소유하면서 때때로 노사간 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미국에서는 헤지펀드의 신문사 소유가 그같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 "이달초부터 다수의 기자들이 뉴욕시 소재 한 헤지펀드 건물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헤지펀드 등 금융사들이 미국 지역신문사를 속속 인수하면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역신문사 주식을 대거 사들이는 대표적 헤지펀드는 '앨던글로벌캐피털'이나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그룹' 등이다. 덴버포스트와 프로비던스저널 등 온라인시대에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신문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비용절감 노하우를 갖고 있는 앨던이나 포트리스 등 헤지펀드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빚더미에 빠진 신문사들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앨던글로벌은 현재 미 전역에 60개의 일간지를 소유하고 있다. '디지털퍼스트미디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이를 관리하고 있다. 사모펀드사인 포트리스가 관리하고 운영하는 '뉴미디어인베스트먼트그룹'은 게이트하우스미디어라는 이름의 조직을 통해 무려 150개의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다. 콜럼버스시나 오하이오, 프로비던스, 로드아일런드 등에 소재한 군소 신문사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 헤지펀드 채텀애셋매니지먼트는 샬럿옵저버와 마이애미헤럴드를 발행하는 매클래치의 최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자다.

블룸버그는 "하지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며 "헤지펀드들이 수익성 개선을 통해 지역신문사를 살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쥐어짤 대로 쥐어짜다 결국 굶어죽이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뉴욕시 소재 앨던글로벌 건물 앞에서 시위하는 기자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기자들은 '헤지펀드들의 목표는 긴축을 통해 회사문을 닫으려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일부 언론분석가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신문분석가이자 웹사이트 '뉴스노믹스' 대표인 켄 닥터는 앨던글로벌에 대해 "그들은 신문사에 재투자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투자한 신문사는 죽어가고 있다. 망해가는 신문사에서 한푼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앨던글로벌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반면 포트리스 대변인은 "뉴미디어의 하루하루 활동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매클래치 대표인 크레이그 포먼은 성명서를 통해 "채텀은 신문사 운영과 관련한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며 "회사를 운영하는 매클래치 가족을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이중의 소유구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앨던글로벌은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는 헤지펀드 중 가장 활발한 인력감축을 벌이고 있다. 8년 전 200명 수준이었던 덴버포스트 소속 직원은 현재 100명이 채 안된다. 앨던글로벌은 지난달에도 덴버포스트 직원 30명 이상을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게이트하우스는 올 1월 잭슨빌시 소재 플로리다타임스유니언 직원을 약 20여명, 전 직원의 10%를 감축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달 매클래치는 '새크라멘토비' 기자 15명을 해고했다.

지역신문사의 상황은 뉴욕타임스 등 전국단위 거대 신문사와는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구독모델 구축에 성공했고, 대도시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보스턴글로브 역시 억만장자 후원기업 덕분에 안정감을 찾고 있다.

미 전역 150여개 신문사를 소유중인 뉴미디어 측은 편집국 조직을 감축하려는 노력이 이익에만 매몰된 처사라는 비판에 적극 반박하고 있다. 이 회사 CEO인 마이클 리드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높은 연봉을 받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직원을 감축하는 것이고, 남아 있는 기자들에겐 보다 많은 기사를 쓰라고 독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 지역 신문사마다 있는 편집디자이너와 교열교정 간부들을 줄이는 대신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있는 중앙미디어센터에 300명 이상을 고용해 전국적인 효율성을 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드는 "우리가 신문사를 소유하는 이유는 지역 언론을 구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역 기업들에게 특화된 온라인 마케팅 서비스 등을 판매하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리드에 따르면 뉴미디어 주가는 지난해 36% 올랐고, 마진율은 10%에 달했다. 앨던 디지털퍼스트미디어 닥터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마진율은 17%로 뉴욕타임스보다 높았다.

리드는 "포트리스 측은 신문사를 운영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다"며 "대신 뉴미디어가 더 많은 신문사를 사들이도록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엔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 경영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대표로 섭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뉴미디어가 소유중인 새러소타헤럴드트리뷴은 2년 전 언론사와 기자들의 꿈인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앨던글로벌의 신문사 소유에 항의하는 기자들은 앨던이 추진하는 비용절감과 인력감축이 편집국을 황폐하게 만든다며 항의하고 있다. 이달 초 앨던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기자들은 확성기와 플래카드를 통해 "신문사 편집국을 피말려 죽이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시위대 중 한 명인 패트리샤 닥스지는 60세 여기자다. 뉴욕주 킹스턴시에 위치한 데일리프리먼에서 일한다. 그는 지난 겨울 편집국 난방시설이 가동되지 않아 사무실에서 두꺼운 벙어리장갑과 털모자를 쓰고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데일리프리먼엔 약 200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현재는 2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인쇄공장을 올버니시로 아웃소싱하면서 마감시간이 임박한 때 포착한 특종이나 단독기사는 아예 기사화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닥스지는 "앨던글로벌캐피털이 신문사업에서 손을 떼기를 원한다"며 "기자들은 도구가 아니다. 기자들을 죽이려 하면 뉴스도 덩달아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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