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변호사 / 법률사무소 '민담'

2016년 11월 쯤 한 손해사정사 소속 직원이 집으로 찾아왔다. "합의서에 싸인 안하시면 보험금을 드릴 수 없습니다." 손해사정사가 한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필자의 어머니인 A는 2011년 경 B생명보험에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했다. 이후 A는 수차례 도수치료 등을 받았고 2016년도에 보험회사에 두 차례에 걸쳐 실손보험금을 청구해 두 차례의 보험금을 받았다. A는 두번에 걸쳐 보험금을 받았기에 추가적인 도수치료비에 대해 보험금이 지급되리라 생각하고(계약내용도 그러했다) 병원 측의 권유에 따라 지속적으로 도수치료를 받았다.

그 후 A는 도수치료비에 대해 B보험사에 제3차 보험금청구를 했다. 그러나 A가 청구한 제3차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에서 B보험회사는 위와 같이 손해사정사 소속의 직원을 집으로 보내 "합의서에 싸인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줄 수 없다"라고 했다. 합의서의 내용은 '이번 회에 한해 실손보험금을 지급받되 앞으로는 도수치료와 관련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합의 안하면 보험금 못 준다"며 보헙금 지급 거부

당시 위 손해사정사 소속 직원이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제시한 근거로는 2016. 5. 내려진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결정문이었다. 위 조정결정문은 '과잉도수치료는 실손의료보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으로 A가 겪은 상황과 유사한 사안에서 보험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었고, 이것은 국내 각 보험회사들에게 도수치료비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험회사 측은 당당했다. 위 결정문을 근거로 '자신들은 법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나 고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번 한번만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므로 다음부터는 도수치료비와 관련해서는 절대 청구하지 마라'는 주장이었다.

뭔가 이상하고 부당하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왜, 도대체 판결문도 아닌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결정문 하나만으로 자신들이 그동안 잘 지급해왔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너무도 당당한 보험사 측의 태도에 황당했다.

추측컨대, 보험사에 대한 보험금 청구금액이 대부분 불과 100만~300만원 이어서 소송으로 갈 경우 소송비용이 훨씬 많이 나오기에 소송으로까지 진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고, 만약 소송을 해도 소송에서 이긴다는 것은 확률 싸움이며,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그때 지급하면 된다라는 생각에 '당당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리라.

보험금 지급받을 권리 포기하지 말아야

그러나 필자는 억울하고 부당한 마음에 우선 소송을 제기하고 봤다. 이에 당시 보험회사는 청구금액 불과 340만원도 채 안 되는 소액사건에 대해 국내 대형로펌을 선임해 소송을 대응했다.

보험회사 측의 주장과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내린 결정문의 내용은 필자를 비롯한 보험가입자들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는 것으로 너무도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보험사, 금융감독원 측의 근거들을 모두 반박하며 나름 논리적인 주장을 펼쳐 나갔다. 결국 1년이라는 지루한 소송과정 끝에 법원은 본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승소판결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년 간 힘든 송사에 휘말려야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현실에 다른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들었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보험가입자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필자가 받은 판결문이 세상에 하루 빨리 알려지기 원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보험가입자들이 더이상 반복해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명근 변호사 / 법률사무소 '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