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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기고]

국법체계, 일대정비가 필요하다

등록 : 2018-06-05 08:40:05

이경선 서강대 공대원 겸임교수 입법학

지방선거와 남북대화라는 중대사 속에서 아쉽게도 개헌 논의만은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연말에라도 국회에서 여야 간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10차 개헌이 이뤄진다면 헌법 규범을 구체화하고 있는 법률의 분화 체계 전반에서도 변화가 이어지리라고 본다. 따라서 입법적 공백과 충돌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헌과 함께 신설되는 조문에 맞추어 개별 법률의 수정과 보완 및 위치 변경 등 일대 정비가 불가피하다.

개헌 논의도 한 발짝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개헌 이후'를 생각할 여력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개헌이 되면 그 이후로 즉시 뒤처리해야 할 법률적 후속 과제들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응 체계를 갖춰두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은 1420여개이며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합하면 4860여개에 달한다. 행정법규와 자치법규 및 전시법제까지 합하면 20만여개의 규범 매트릭스가 구축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국법체계는 거대한 하나의 '법령의 숲'을 이루고 있으며 구조공학적 관점으로 보면 윤리와 계약이 서로 연결을 맺고 있는 알고리즘이기도 하다.

시대와 맞지 않는 불필요한 법 많아

현재 우리나라의 국법체계, 법률 구조는 일정한 우선 순위나 중요도 순으로 구축된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사회적 필요와 입법자의 재량, 정권과 실력자의 관심사, 포플리즘, 언론의 조명과 사회적 논란에 따라 적당한 땜빵과 주먹구구식으로 입안된 측면이 크다.

이번 개헌을 계기로 우리나라 국법체계와 규범체계의 복잡성·난해성의 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시대적 수요와 인식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만들어진 이념적 법률들, 구식 정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법률들은 없는지 냉철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나아가 과잉되고 불필요한 법률을 너무 양산해 불필요한 예산사업, 소모적인 법정사업, 의도적인 관익사업, 관행적인 규제 족쇄 등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평가가 필요하다.

국법체계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정비는, 개정된 헌법 조문 체계와 헌법 표현 및 자치입법권 관계를 고려한 법령 조문 수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으로 해당 법률이 새로운 시대에도 존속돼야 할 가치가 있는지 질적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헌법 아래 1420개의 법률은 기본법이냐 개별법이냐, 일반법이냐 특별법이냐로도 나눌 수 있으나, 기본법형·과거사 진상규명형·사건조사형·행사지원형·교육지원형·신분구제형·처우개선형·공헌예우형·보호보존형·육성진흥형·공공캠페인형·재활용촉진형·가중처벌형·주변지역지원형·소비촉진형·기관설치형·구호구제형·중재조정형·기금회계설치형·전문자격형·협동조합형·보험연금형·조세형·직제형·특구지정형 등 일정한 패턴의 법룰 모델로 유형적 분류(grouping)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국법체계 전체를 조망하면서 헌법과 법률의 연계성을 분명히 하고 헌법적 근거가 미약한 법률들은 정비해 나가야 한다. 헌법 규범이 법률로 구체화되지 않은 경우 또한 명확한 입법화 조치가 뒤따라야 하겠다. 개헌과 함께 삭제되는 헌법 규범들도 있으므로, 해당 헌법 조문에 근거하던 법률들의 존폐도 동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률 간의 관련성과 독자성을 잘 파악하여 분법통법(分法統法) 기준에 따라 합할 것은 통합하고 나눌 것은 분리하는 조치들도 취해야 하겠다.

법, 늘리는 것 보다 정비가 시급

국법체계 일대정비를 통하여 무분별한 입법만능주의를 억제하고 입법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체계정당성' 원리만으로 퉁치기 보다는, 항상 입법 우선순위, 입법의 밀도, 입법적 공백(입법불비), 법률 간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법을 통해 우리 사회가 국가예산을 어떻게 배분하거나 나눠먹기 해왔는지, 법제적 근거 마련을 통해 잔꾀 많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 이익추구의 적폐들을 형성시켜 놓았는지, 온 사회가 제대로 한 번 들여다봐야 할 때다.

이경선 서강대 공대원 겸임교수 입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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