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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기고]

숫자 많아지는데, 왜 변호사는 부족할까?

등록 : 2018-06-07 12:02:15

박종언 해내 대표변호사

보통의 법조인들이 들으면 웃음을 던지겠지만, 4월의 봄날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사건은 항아리 손괴와 관련된 것이었다. 의뢰인이 가장 아끼던 항아리에 누군가 자신의 것이라며 락카스프레이를 뿌린 것이다. 의뢰인은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지목했고 수사기관에 고소를 준비했다.

고소장을 쓰기 위해 의뢰인은 변호사를 수소문했다. 당연히 돈이 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도움을 주는 변호사는 없었고, 의뢰인은 홀로 고소장을 냈다. 수사기관은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통보했다.

수사기관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입장이었고, 필자는 의뢰인과 밤을 지새우며 항고장을 작성했다. 예상했던 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질문은 '왜'였다.왜 의뢰인은 변호사 조력을 받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일까.

국민 2천명당 변호사 1명 시대

1997년 3364명이였던 변호사 수는 2018년 현재 2만5000명에 이르고 있다. 1997년엔 국민 1만3000명당 변호사 한명이 있었다면 지금은 국민 2000명당 한명이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통한 법률전문가 확대는 국민들의 법률 조력자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변호사의 관계는 가까워지지 않고 있다.

제1심 민사본안사건(단독)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은 2012년 11.5%에서 2016년 17%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민사1심 단독사건은 2012년 전체 24만3570건의 소송이 제기됐는데 이중 2만8111건만이 원·피고 모두 변호사를 구했다. 2016년에는 전체 24만3798건 중 4만1384건으로 변호사 선임 비중이 살짝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변호사 숫자가 1.8배 증가했음에도, 변호사 선임 비율은 1.5배에 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이는 소액사건일수록 심각해진다. 연간 70만 건에 이르는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쌍방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이 1%를 못 넘기고 있다.

형사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가 신문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일수록 수사기관 단계에서 자신의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재판에 넘겨지는 게 현실이다.

2004년 이후 매년 7~12%씩 변호사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변호사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반해 국민들이 변호사 도움을 받는 비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변호사 입지 점점 좁아져

대다수 국민들에게 변호사의 모습은 단편적이다.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뉜다. 세련된 옷차림을 갖춘 엘리트 변호사와 후줄근한 차림의 인권변호사. 대한민국에 수만명의 독립적인 변호사가 존재함에도, 변호사는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인식될 뿐이다.

변호사는 ‘어렵고 비싸다’는 뿌리 깊은 사고가 변호사를 찾는 발걸음을 어렵게 한다. 숫자가 증가하였음에도 역할이 제한적인 것은 변호사들의 책임 또한 크다. 까다로운 의뢰인을 멀리하고, 돈이 되는 사건만을 수임한다. 승소가능성을 살피며,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모습이 변호사의 입지를 점점 좁히고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 어떤 국민이라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변호사 한명쯤은 이름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이 작은 감기에도 환자를 돌보듯이, 변호사 역시 사소한 일상에서도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연간 약 2000만건의 사건이 전국 법원에 접수된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국민들은 변호사 선임을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편한 발걸음과 겸손한 마음을 통해, 의뢰인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명감 있는 변호사와 진실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고 싶은 국민이 서로 마주하길 기대한다.

박종언 해내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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