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린 빌더버그 연례회의가 7일(현지시간) 3박4일 일정으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의 주제는 △유럽의 포퓰리즘 △경제 불평등 △직업의 미래 △인공지능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자유무역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러시아 △양자컴퓨팅 △사우디와 이란 △'탈 진실'(post-truth) 시대의 세계 등이다.

영국 온라인매체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정치인과 기업인, 금융인, 학자 등 북미와 유럽의 엘리트가 모이는 빌더버그 회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개최 때마다 비상한 관심을 불렀다. 음모론자들은 빌더버그 회의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글로벌 단일 지배를 꾀하는 모임이라고 확신한다.

빌더버그 회의 참석자들이 '그림자 세계정부'를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연례회의에 맞춰 피켓시위를 벌이곤 한다. 반면 회의 참석자들은 '단지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빌더버그 모임은 연례회의 하루 전 참석자들의 면면을 공개한다. 올해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을 포함해 128명의 유력인들이 모였다. 하지만 회의록이나 논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음모론자들은 '사악한 권력자와 부자들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추정한다.

빌더버그 회의는 1954년 5월 네덜란드 빌더버그 호텔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당시는 전후 유럽에 반미 열풍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미국은 최고의 경제번영을 구가한 반면 유럽은 미국 주도의 경제회복정책인 마셜플랜에 대륙의 운명을 맡기던 때였다.

빌더버그 그룹은 정치와 경제, 군사적 협력에 기반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대륙이 형제간 우애를 되살리길 희망했다. 냉전 시기 소련이 동유럽 위성국가들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던 때여서 그같은 협력이 더욱 절실했다.

이후 빌더버그 회의의 취지는 '자유시장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수호'로 확대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전 세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인디펜던트는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회의 기간 동안 무슨 내용이 논의되는지 함구해왔다. 하지만 30년 이상 빌더버그 운영위원회에서 일한 회원이자 영국 노동당 부당수를 지낸 데니스 힐리는 2001년 언론인 존 론슨의 저서 '그들'(Them)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빌더버그 모임이 세계 단일정부를 만드는 데 전념했다는 비판은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헛되이 서로를 겨눠 영원히 싸울 수는 없다고, 사람들을 죽이고 수백만명을 난민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전 세계 단일 공동체가 좋은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음모론의 역사를 다룬 책 '부두교 히스토리'(Voodoo Histories)의 저자이자 언론인인 데이빗 애런오비치는 "빌더버그 모임이 각국의 대통령을 만들고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유령조직이라기보다 해마다 모여 값비싼 저녁식사를 하는 모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 프리랜서 언론인인 해나 보노는 "참석자 면면을 보라"며 "그들은 업무로 가장 바쁜 때에 나흘 일정의 회의에 참가할 정도"라고 지적하며 단지 값비싼 저녁식사 모임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 대안우파 라디오방송인 '쇼크 조크'를 진행하는 알렉스 존스는 음모론을 신봉하는 유명인 중 한명이다. 그는 "빌더버그 그룹은 무자비하다. 그들이 악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빌더버그 그룹의 어둠의 권력을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2013년 BBC 프로그램인 '선데이 폴리틱스'에 출연해 "빌더버그 그룹은 주요 정당에 꼭두각시를 심어 당을 조종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7년 미국 버지니아주 챈틀리에서 열린 빌더버그 회의에 사람을 잠입시켰다 들키기도 했다. "빌더버그 회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타도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