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론 폴 전 공화당 의원

1987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만났다. 국제 지정학 지도를 극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미소간 대화의 장이 활짝 열렸다. 수십년간 동서 진영을 대표해 서로 적대했던 관계였다. 미소 회담 시작부터 '실패'라는 평가가 무성했다.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년 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다시 만났다. 현재의 역사는 당시 두 번의 회담에 대해 '냉전을 종식하고 핵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준 만남'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공은 실패에서 시작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12일 론 폴 미국 공화당 전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반도문제에서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억측과 비관론이 난무한다. 외교와 평화로 가는 길목을 방해하고 얕잡아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폴 전 의원은 "네오콘들은 북한이 먼저 협상카드를 모두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2011년 리비아 사태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사망한 이후 그 어떤 국가지도자도 그같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네오콘의 가장 큰 두려움은 평화가 '발발하는'(break out)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전쟁과 갈등은 네오콘이 먹는 주식"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폴 전 의원은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이란과 핵합의를 이뤄냈던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겐 찬사를 보냈으면서도 북한과 외교적 대화로 핵문제를 풀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비난하고 나섰다"며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과 같은 당 소속의 백악관 주인을 추종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상황은 정치(당파)와 정책에 대한 혼동을 말해준다는 게 폴 전 의원의 분석. 그는 "많은 미국인들이 정치와 정책을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한반도 핵전쟁에 이르는 길을 걷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며 "이유는 오직 현직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그런 태도가 합리적인가. 정치색이 상식을 누르고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도록 상황을 만들고 싶은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대화가 갈등보다 낫다는 건 진실이다. 거래가 제재보다 나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많은 미국인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대화-갈등, 거래-제재를 뒤바꾸려 한다"고 비판했다.

폴 전 의원은 "현재 미국과 북한 간의 화해 협력 분위기는 올해 초 북한이 한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올림픽 때부터 남북한은 서로를 적이 아닌, 이웃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며 "그같은 평화프로세스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어떠하든지 지속될 것이다. 마땅히 미국이 격려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긴장과 갈등을 줄이는 대화의 시작점"이라며 "지난 70년 동안 약 3만명에 이르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다. 이 역시 곧 철수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미국이 해야 할 단 한가지가 있다면 한반도에서 되도록 멀리 물러나 남과 북이 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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