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미 지음 / 카모마일북스 / 1만7000원

#고즈넉한 도시는 책 장터가 열리는 날이 되면 아이젤 강 중심으로 가장 번잡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무려 900여개에 가까운 책 부스와 마을 구석에 자리한 고서점과 서점들 역시 유럽 각지에서 모여드는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자그마치 약 13만명의 책사냥꾼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책축제이다. 여기저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누구라도 축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또한 가든파티가 곳곳에서 열린다. 전시장으로 변한 골목에는 수많은 미술품들이 으스대고 있다. 조금 음습해 보이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시를 낭송하는 이들이 있어 정감이 넘치는 따스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마을 전체가 앤티크 갤러리가 되어 버린다.

새로 나온 책 '시간을 파는 서점'에 나오는 내용이다. 해마다 8월 첫째 주 일요일에 유럽 취대의 책 장터가 열리는 네덜란드 데이븐떠의 얘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독서생활자의 특별한 유럽 서점 순례'를 부제로 한다. 2010년 남편의 유학을 따라나선 저자는 4명의 아이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데이븐떠를 포함,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 포르투갈의 서점과 책마을을 돌아봤다. 유럽 구석구석의 작지만 큰 서점들의 인테리어와 공간의 매력뿐 아니라 그 공간을 만들어낸 각 서점들만의 역사까지 책에 담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안 예술서점


인구 10만명의 네덜란드 도시 데이븐떠는 1477년 최신 인쇄술을 사용해 책을 인쇄하면서부터 '책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곳에는 공식 등록된 고서점만 5000개가 넘고 소규모 서점은 더 많다. 고서점인 '당신을 위한 책을 만들고 인쇄합니다'는 그 중 하나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들을 팔며 전통을 지킬 뿐 아니라 문학 대중소설 역사 등에 관련된 책을 출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맞춤형으로 제작하며 전통을 발전시킨다.

네덜란드에는 책마을 브레이더포르트도 있다. 1993년에 책마을로 변신한 브레이더포르트에서 책은 마을 사람들의 생계이기도 하지만 자존심이고 자랑이다. 이곳은 책마을의 정서, 역사, 정신을 판다. 벨기에 흐뒤도 책마을로 빼놓을 수 없다. 고원지대 초원의 숲에 위치한 흐뒤는 1984년 한 기자가 창고를 개조한 도서관을 만들면서 시작했다. 부활절을 책축제로 만든 열정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유럽에서도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종이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매한가지다. 프로방스에 있는 서점 '르 블뤼에'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으로 위기에 봉착하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서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점의 역사를 시민들이 지켜낸 셈이다. 영국 '가디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위로 꼽는 서점 '부칸들 도미니카넌'의 역사도 깊다. 2013년 재정난을 겪으면서 2014년 2월 문을 닫았지만 회생을 위한 협상을 거쳐 셀렉시즈 도미니카넌에서 부칸들 도미니카넌으로 이름을 바꾸고 살아남았다.

저자는 워킹맘으로 생활하며 4명의 자녀들을 키웠고 타지에서의 어려움을 책마을과 서점으로 극복했다. 딸들과 시작한 유럽의 도서관, 서점 얘기는 어느새 풍성해졌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셈이다. 올해는 정부가 정한 '책의 해'다. 국내에도 자신들만의 얘깃거리와 작은 역사를 담은 서점들이 많다. 그 서점들을 방문하면서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보는 것도 좋겠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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