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사전문가

지난 15일 공개된 미국 재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961억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하던 러시아가 지난 4월 한달간 474억달러의 미 국채를 매각했다. 3월엔 16억달러, 2월엔 93억달러 규모 미 국채를 시장에 던졌다. 약 1년 전 러시아는 1049억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했었다.

다른 주요국들도 미 국채를 팔고 있다. 세계 2대 미 채권 보유국인 일본은 4월 한달간 120억달러 미 국채를 팔았고, 제1대 보유국인 중국은 70억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아일랜드는 미 국채 170억달러를 팔았다.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관세전쟁 때문에 금융시장은 좌불안석이다. 거기에 미 국채를 대량 보유중인 주요 나라들이 재무부 발행 채권을 팔면서 기름을 끼얹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러시아의 미 국채 투매가 미국의 경제제재에 항의하는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대단히 나쁜 소식이다. 외국의 미 국채 수요가 탄탄해야 날로 늘어가는 재정적자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대규모 감세안이 통과돼 들어오는 돈은 적은 반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 정책에 따라 나가는 돈만 많아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올해 약 1조4400억달러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 국채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미 재무부 국채 입찰에 참여한 해외 투자자 비중은 15.78%로, 한달 전인 2월 21.09%에서 급격히 낮아졌다.

대규모 감세 덕으로 여유가 생긴 미국 기업들은 자사주매입에 혈안이 돼 있다. 이들 기업의 묻지마 주가 띄우기로 미 증시는 과대평가된 상황이다. 조만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국가의 빚이 날로 늘어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경제성장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이 격화될 경우 미 국채를 내던지는 나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외교와 국방 등 전방위에 걸쳐 대결의 정책을 추구할수록 달러와 미 국채는 힘을 잃어갈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러시아 군사전문가 아르카디 사비츠키는 20일 온라인매체 '스트래티직컬처' 기고에서 "미국 달러의 위용이 예전만큼 못하다"며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안 좋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서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달러 탈피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비츠키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양자교역에서 점차 달러를 배척하고 있다. 이달 8일 양국 지도자들은 양국 교역에서 각국의 통화를 사용하자고 합의했다. 지난해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하고 받은 대금의 약 9%가 러시아 루블화였다. 러시아는 중국이 수출하는 상품 대금의 15%를 위안화로 결제했다. 3년 전엔 루블화 결제가 2%, 위안화 결제가 9%였다.

지난해 10월 중국은 위안화와 루블화로 거래하는 지불결제시스템을 완료했다. 올 3월엔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이 출시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석유 거래에 양국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달러를 점진적으로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들의 공통 어젠다이기도 하다. 또 중국과 일본은 2012년부터 양자교역 일부에서 각국 통화로 결제하고 있다. 달러 가치 부침에 따른 리스크를 장기적으로 관리하자는 취지다.

2016년 글로벌 투자회의에서 헤지펀드 업계 큰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필요한 건 금(gold)뿐, 다른 모든 투자대상은 쓰레기"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름깨나 날리는 국제적 머니매니저들도 최근 '금을 보유하라'고 적극 추천하고 있다. 미국 연준에 금괴를 보관하던 독일 등 여러 나라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자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미국의 각종 경제제재에 시달리는 러시아는 달러체제를 우회하기 위해 금광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합작해 시베리아 남부 금광지역을 개발하기로 했다. 1200만톤의 광석을 캐 연간 약 6톤 정도의 금을 생산할 계획이다. 동시에 러시아중앙은행은 지난 3년 동안 금보유량을 크게 늘렸다. 현재 전 세계 5번째 금 보유국인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 관세 부과, 달러가치의 출렁임 등을 막기 위해 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비츠키는 "미국이 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수록 이들 나라는 달러 의존성을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채권시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달러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다. 금은 점차 최고의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한 부채에 신음하는 미국이 자국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경제제재를 남발하고 무역전쟁을 촉발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점차 달러와 미 국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게 나쁜 징조다. 대결의 정책은 달러와 미 국채를 약화시킬 뿐이다. 미국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는 신호가 분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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