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전 구미YMCA 사무총장

'기상청이 공무원을 살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민선 7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며칠 전부터 태풍 '쁘라삐룬'(PRAPIROON, '비의 신'이란 뜻)이 근래에 드물었던 '한반도 통과 예보'가 있자 서둘러 취임식을 취소하고 노란 색의 작업복을 입고는 재난 취약지구를 방문하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비록 많은 비가 왔지만 그 덕분에 허례로 덥혀질 취임식이란 이름의 낭비를 줄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일꾼의 모습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모습의 준비와는 달리 새로운 자치단체장을 맞이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다른 양태도 있었습니다.

'우물에서 숭늉달라'와 '잔치마당에 곡하기'

그 하나가 '우물에서 숭늉 달라'고 합니다 '새 도지사·시장 첫 출근 날, 도청·시청 앞 갖가지 외침'이라는 기사 제목처럼 첫날부터 봇물처럼 넘쳐나는 요청을 쏟아놓는 모습입니다. 과거 수구 보수일색의 경남 도지사, 창원시장과는 달리 이 정부의 핵심 진보인사로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다고 생각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허성무 창원시장의 임기시작 첫날부터 그 임지인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정문 앞에는 노동자들이 갖가지 요구가 넘쳐났던 것입니다. 현수막을 들고 한목소리로 강하게 요청하는 모습입니다. '약속한 내용을 조속히 지켜라'고요, '시외버스 사업장, 소각장 등을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라'고요. '제대로 된 정규직화 실시하라' 등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잔치 마당에 곡(哭)하기'입니다. 대구경북에서 이례적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구미시장 취임하는 날에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새마을청년연합', '우리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경북애국시민연합',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 등 서울과 대구, 구미에서 모인 5개 단체 70여 명이 참가하여 '구미시장 선거공약 규탄집회'를 연 것입니다. 이들 단체 회원들은 지난 2일 구미시청 앞에서 태극기와 새마을기, 성조기 등을 몸에 두르거나 손에 든 채 "장세용 물러가라" "박정희 대통령 만세" 등의 구호와 새마을 노래, 애국가 등을 외치고 불렀습니다.취임식도 생략한 채 새로운 일을 시작도 하지않았는데 물러가라니요. 구미시장을 뽑은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구미시민의 결정을 무시하고요.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당선 후 "(새마을운동 관련) 기존 사업을 재검토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고 시민과 논의해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면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안에 별도의 전시동을 마련하는 등 용도를 일부 변경해 지역의 독립 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방안도 고려한다"며 장세용 시장이 한발 뒤로 물러선 모습은 보지도 않고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첫째 경우에서는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피를 먹고 살던, 그래서 있는 자들,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잔치마당이라고 불리던 곳에 새로운, 그러면서도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동지(?)가 책임자로 들어섰으니 그에게 지금까지의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동시에 그들이 그 곳에서 얼마나 크게 아팠느냐를 실감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새로운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는 '못된 상실감의 빗나간 추악함'이거나 '노욕에서 나온 객기'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의 처량함입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비닐로 된 비옷으로 가리고는 소리치는 몇몇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보수의 성지를 점령한 진보의 못된 무리'라는, '적개심과 무지, 맹신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바보 이반'의 도깨비들이 만들어낸 '바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 망친다' 일독했으면

이런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과의 다름은 시대의 변화를 몸으로 알게 해 주는 것이면서도 조상들이 가르쳐주던 것과는 매우 다름을 느낍니다. 아무리 급하게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막 일자리에 처음 들어가는 이들에게 지금까지에 몇 년을 두고 계속해서 싸웠던 일들을 해결하라거나 제시한 이야기들의 변화를 말하라는 것은 '조급함'에서 나온 '성급함'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신성욱, 어크로스, 2014)를 일독하고 다시 자리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김영민 전 구미YMCA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