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 후려치기 수단 지적 … 계약기간중 비용 상승하면 납품단가 인상요청 가능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

17일부터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하도급업체에 원가정보 등 경영상 정보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경영상 정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정해 고시하게 된다. 그동안 대기업 등은 하도급체에 경영정보를 제공받은 뒤, 이를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계약기간 중이라도 중소 하도급업체가 발주처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할 수 있는 요건이 대폭 확대된다. 원재료 가격 상승뿐 아니라, 인건비 등 각종 경비가 급등하는 경우에도 가능해진다. '납품단가 증액 요청'은 하도급업체가 직접 할 수도 있고,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갑을관계에 있는 하도급업체가 직접 요청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공정위는 1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음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경영상정보 구체적으로 고시 = 그동안 대기업들은 하도급업체에 경영정보를 요구한 뒤 이를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방편으로 활용해왔다. 원가정보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정보나 매출액·거래량 등의 정보를 받아낸 뒤,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해왔다. 납품이 생명선인 하도급업체로선 경영정보 제출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개정 하도급법에 따라 이같은 관행이 상당히 줄어들 전망이다.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 경영상 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원사업자가 요구할 수 없는 '경영상 정보'의 세부 종류를 공정위 고시로 못박기로 했다. 이 고시는 17일부터 시행된다.

경영상 정보에는 △납품물품 등의 원가정보 △다른 사업자에 납품하는 물품의 매출 정보 △타 거래처와의 거래조건 등 영업전략 정보 △제품개발계획 등 경영전략 정보 △다른 사업자와 거래에서 사용하는 비밀번호 등 전산정보가 포함된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 여기에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나 성과공유 강화, 생산공정 개선과정에서 최소범위 정보공유, 하도급업체의 요청에 따른 경영전략·기술자문 등이 포함된다.

◆중기조합 납품단가인상 대리요청 = 계약기간중 하도급업체가 발주처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할 수 있는 요건도 확대된다. 현행 하도급법은 원재료비가 급등할 경우에만 증액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하도급업체는 원재료비뿐만 아니라 인건비·경비 등 공급원가 상승 정도에 관계없이 직접 원사업자에게 증액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또 개별 하도급업체가 증액 요청을 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소속 하도급업체를 대신해 증액 요청을 하는 길도 열어뒀다. 다만 조합의 대리 요청은 공급원가 상승정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로 한정된다. 조합의 대리요청은 △계약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재료 가격이 10% 이상 상승한 경우 △인건비가 계약금의 10% 차지하고, 최저임금이 7% 이상 상승한 경우 △재료비·인건비·각종 경비의 상승액이 남은 계약금의 3% 이상인 경우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계약체결일로부터 60일이 지난 뒤 조합을 통해 납품단가 증액을 요청할 수 있다. 계약기간 자체가 60일 이내인 경우에는 상관없다. 또 재료비·인건비·각종 경비의 상승액이 계약금의 5%가 넘을 때는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

◆김상조 "하반기 추가 법률개정 추진" = 한편 납품단가 증액요청을 받은 원사업자는 10일 이내에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하거나 10일 이내에 협의를 개시하지 않으면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조치를 받게 된다.

협의가 결렬될 경우에는 공정거래조정원이나 건설협회 등 10개의 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해 강제조정을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권익을 침해하는 불공정행위도 금지된다. 여기에는 △경영정보 요구행위 △전속거래 강요 행위 △기술수출 제한행위 △공정위 조사협조를 이유로 한 보복행위가 포함됐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하도급 분야에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중소기업이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 우리 경제가 당면한 양극화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각종 중소기업 문제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하반기에는 중소 하도급업체들이 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법률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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