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산 지키고 정권·재벌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 확보 위해

수탁자 책임 충실히 이행, 수익률 극대화에 최선을 다하기 위한 조치

이달 말 도입이 예정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당초 안보다 크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민들과 의결권 전문기관, 학계 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재계 우려를 감안해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 조항들은 최종 도입안에서 뺄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기본적인 주주권 행사 조차 완화하겠다는 것은 차라리 도입을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국민의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국민들보다 재벌 친화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라며 이는 촛불민심에 역행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가 훼손되고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충실한 이행을 강조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 사진 국민연금공단 제공

◆"코드 도입은 주주권 기본을 지키는 것" = 16일 금융투자업계와 의결권 전문기관들에 따르면 이달 말 도입 및 시행이 예정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 세부 내용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재벌세력과 경영단체들은 일부 언론들을 동원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지나친 경영간섭으로 인해 기업 활동과 한국 경제에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본질적 내용을 호도하며 침소봉대를 넘어 혹세무민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들인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기금을 운용하겠다는 내용을 구체적이며 투명하게 정하고 발표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노후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며 수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명문화시켜 기본적인 업무를 충실히 행사하자는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다. 이에 대한 도입을 반대하거나 세부 시행방안을 완화하자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마저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재벌개혁·경영간섭이라 비판하는 것은 코메디" = 국내 의결권 전문기관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16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재벌을 길들이려고 한다, 경영간섭을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비판하는 것은 코메디"라며 "이 제도는 기관투자자들이 수탁자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며 수익률을 극대화 하기위한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2000만명 이상에 달하는 우리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100% 수급권자들의 이익의 관점에서 운용돼야한다"며 "여기에 정부나 정권의 이익이 개입되거나, 재벌들과 특정 이해집단의 이해가 반영되어서는 안 되고 이를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도입 골든타임 놓쳐 = 류 대표는 정부가 집권 초기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미 2016년 말 기업지배구조원 및 민간 중심으로 구성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7대 원칙')'을 공표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해 말에야 마무리 됐다. 이 내용을 토대로 국민연금은 지난 4월 최종보고서를 만들었고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7대 원칙과 최종보고서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미 도입한 20여 개 국가들의 규범을 전반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미 전 세계적 추세다.

류 대표는 "외부용역이 끝난지 7개월이 지난 후 또다시 공청회를 연다고 하는 등 국민연금이 정권 교체 후 14개월이 지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며 "이미 집권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재벌들에게 시간을 내주고 반대 의견이 확산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의 본질적 내용이 재벌세력들에 의해 훼손될 시간만 벌어줬다는 지적이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넘긴다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나라 운용사들 거의 대부분이 소유관계로, 거래관계로 재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런 운용사들에게 온 국민들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맡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때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다하더라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걸림돌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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