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균 농협 농업박물관장

요즘처럼 땀이 콩물처럼 흐르는 염천에는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난다. 비지땀 흘리면서 일할 땐 두부에 콩 막걸리가 제격이다. 옛날에는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다 콩 없이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다. 역시 우리 밥상에서 콩을 빼놓을 수 없다.

콩은 흔히 ‘밭에서 나는 고기’로 불려질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한 작물이다. 40%의 단백질과 18%의 지방, 8.5%의 수분, 7%의 당분이 함유되어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제공해 준다. 콩은 발효를 시켰을 때 영양이 더 풍부해 지는데, 발효콩에는 펩타이드가 생성되어 콜레스테롤 감소, 인슐린 조절, 혈압 강하, 항산화 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레스테롤 감소, 인슐린 조절, 혈압 강하, 항산화 효과

콩은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지역으로 알려질 만큼 우리에겐 친숙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토종 작물이다. 두만강도 콩이 가득차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콩이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청동기 시대 이후의 유적지에서 탄화된 콩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콩’이라는 한글이름이 문헌에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15세기 지어진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여기에 ‘콩爲大豆’라 표기돼 있다. 즉 대두는 곧 콩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콩은 오래전부터 불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1527년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에는 ‘菽’은 ‘공 슉’으로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 임원경제지, 농정신서 등에는 콩은 주로 한자 菽, 豆, 太 세가지로 표기돼 있다.콩에 관한 기록도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삼국사기에는 ‘서리가 내려 콩이 상하였다’고 했으며, 신문왕이 메주와 장을 혼례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혜통스님이 흰콩과 검은콩으로 신력을 부려 당나라 공주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콩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보편적으로 재배된 탓에 언어에도 콩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배여 있다. 바보를 ‘숙맥’이라 했는데 이는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한다는 뜻이다. 가족들이 협심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집안을 ‘콩가루집안’이라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교도소에서는 콩밥을 줘서 교도소 들어가는 것을 ‘콩밥 먹는다’고 했다. 볼일 보러 가서 도무지 돌아올 줄 모르는 경우를 ‘콩팔러 갔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한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되는 대중가요도 있다. 빽빽이 들어선 모양을 ‘콩나물시루’에 비유하기도 한다. 모두 콩이 흔해서 생겨난 말이다.

문학소재로도 콩을 많이 활용했는데 전래동화 콩쥐팥쥐는 주인공이름에 콩과 팥을 붙였고, 도연명은 ‘남산 아래에 콩 심으니 풀은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물구나’며 콩을 소재로 시를 읊기도 했다. 부산지역에는 ‘콩하나 풀하나 니덕에 주묵고’하는 콩을 노래한 전승민요도 있다. 김유정은 ‘금따는 콩밭’에서 콩밭에서 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오영수는 ‘요람기’에서 콩서리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콩이 생활 주변에 흔하다 보니 콩을 이용한 민속놀이도 많았는데, 콩으로 윷을 만들고 콩으로 점을 치기도 했다.

소비와 재배면적 감소로 생산 기반마저 위협받아

오랫동안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했던 콩. 이제는 소비와 재배면적 감소로 생산 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소비량의 3배를 수입에 의존하고 그마저도 유전자변형 등으로 품질을 믿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쌀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콩을 심으면 전량 수매해 줄 뿐만 아니라 소득도 쌀보다 20%이상 높다 한다.이러한 콩이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세계 콩 무역에서 62%를 수입하는 중국과, 41%를 수출하는 미국이 콩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재미있는 콩 이야기를 모은 콩전시가 10월 28일까지 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콩나물 시루에 물도 주고 콩서리 하던 시절을 추억하며,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조상들의 나눔과 배품의 정신을 반추해 보길 기대한다.

김재균 농협 농업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