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

가을의 문턱인 입추가 지났지만 전국 방방곡곡은 불판처럼 달궈진 채 식을 줄 모른다. 한 낮 도심의 거리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고개를 들 수 없고, 빼곡한 건물들이 내뿜는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 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폭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요즘, 전기요금이 아까워 에너지 사용을 꺼리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어르신들은 어떨까 싶다. 물론 이런 분들을 위해 경로당을 활용한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고는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일반쉼터, 그리고 각 동별로 1개씩 밤 9시까지 운영하는 연장쉼터가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숙면을 취해야 할 밤에는 이용할 수 없어 별 도움이 안 된다. 샤워를 해도 곧바로 땀이 줄줄 흐르는 좁은 방에서 밤잠을 설칠 어르신들을 떠올리며 생각한 것이 ‘야간 무더위 쉼터’ 다.

65세 이상이면서 수급자인 저소득층으로만 한정

8월말까지 폭염특보가 발령될 때만 운영하는 임시방편이지만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여건 상 생활 형편이 괜찮은 분들은 제외하고 65세 이상이면서 수급자인 저소득층으로만 한정했다. 그래도 이런 분들이 노원구에 1만 여 명이나 된다.

우선적으로 공간이 넓은 구청 대강당과 경로당 5곳을 야간 무더위 쉼터로 활용하기로 했다. 어르신들이 집처럼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도록 3~4인용 텐트 20개를 설치해 하나씩 배정했다. TV는 물론 냉장고를 비치해 음료와 간식도 제공한다. 다만 구청 강당은 낮에는 구청에서 사용해야 하니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만 운영하고 어르신 안전을 위해 의료 인력을 포함해 직원 3명을 배치했다. 이들은 혈압을 체크하고 어르신들 감기예방을 위해 초저녁과 자정, 새벽 4시에 냉방 온도를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로당을 활용한 야간 쉼터에도 전담 책임관리자가 상주해 안전을 보살핀다.

이러한 야간 쉼터 운영 소식을 대상 어르신들에게 전화나 문자, 방문을 통해 안내했다. 그리고 매일 거주지 주민센터에서 이용 신청을 받았다. 운영 첫날, 모두 19명이 신청해 구청에서 9명이 주무셨는데 8월1일 111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오면서 야간 쉼터 이용자가 몰려들었다. 특히 구청 쉼터는 밤에만 이용하지만 냉방이 잘되고 넓은 공간에 각자 텐트에서 혼자 쉴 수 있고 자원봉사단체 회원들이 매일 어르신들에게 손맛사지를 해주어 인기가 높다.

현재 야간 쉼터는 구청 대강당을 포함해 10곳이다. 이용자가 늘면서 쉼터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많아 지역 내 방학 중인 초등학교 한곳 체육관을 추가해 구청 쉼터와 같은 형태로 운영 중이다. 다만 야간쉼터는 관리와 인력확보에 어려움으로 무작정 늘릴 수는 없어, 밤 9시까지 운영하는 기존 연장쉼터를 19곳에서 24곳으로 늘렸다. 야간쉼터를 운영한지 12일째, 8.10일까지 1029명의 어르신이 다녀가셨다. 이중 구청 쉼터 이용자만 255명으로 전체 이용자의 25%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

우리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시도였지만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지난 6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노원구를 방문했다. 폭염으로 힘들어 하시는 한 어르신 집을 방문해 손수 모시고 구청 쉼터로 안내하면서 다른 지자체로 확대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폭염도 머지않아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은 폭염의 그 순간 순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일 수 있다.

에너지 취약 계층을 위한 근본대책 필요

이번 기회에 에너지 취약 계층을 위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이대로 간다면 또 내년이 문제다. 현재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제도는 겨울철 난방비 지원에만 집중되고 있다. 원룸이나 지하, 옥탑 등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 그래야 OECD 회원국답게 가구별, 지역별 현실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단칸방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시원하고 넓은 강당에 마련된 텐트에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잘 잤다는 한 어르신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