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색만 갖출 뿐 국민의견 청취안해

발의 전에 하는 정부입법과 정반대

의원들조차 "그런 제도가 있었나"

국회가 국민의견을 받는다며 만든 입법예고 제도 결과를 입법과정에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10일 가량의 입법예고 기간만 맞추지 제도도입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어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14일 현재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서 진행 중인 입법예고 법안은 170여 건에 이른다. 상임위에 회부된 법안 중 본격 심사전 10일 이상 입법예고해야 한다는 국회법에 따라서다.

길게는 지난달 30일 이양수 한국당 의원이 발의해 올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법부터 짧게는 지난 9일 경대수 한국당 의원이 발의해 올린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기본법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10건 내외의 찬반의견이 달렸지만 민감한 법안은 수천건의 의견이 달리기도 한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해 지난 6일 올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는 불과 일주일새 2000여건의 의견이 제시됐다. 거의 대부분인 99% 가량이 반대의견이다.

하지만 이런 국민의견이 얼마나 입법과정에 반영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7월국회에서 통과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2만건이 넘는 반대의견이 달렸지만 통과됐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50만건이 넘는 반대의견이 달렸다. 하지만 이 역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대표적인 몇 가지 법안들을 제시한 경우지만 나머지 법안이라고 다를 게 없다.

역대 입법예고를 거친 거의 대부분 법안들은 반대 의견 일색이다. 이들 법안은 기간만 지나면 상임위에서 법안심사를 진행한다.

문제는 법안을 논의하는 상임위도 대표발의를 한 의원도 이런 입법예고 제도를 별반 신경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상임위 관계자는 "이때껏 입법예고를 상임위 입법 논의과정에 반영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조차 "그런 제도가 있냐"고 되물을 정도다.

국회입법예고 제도는 정부입법예고 제도와도 전혀 다르다.

정부입법예고는 법안을 발의하기 전 발의하는데 반해 국회는 법안을 발의 후 알리는 제도다.

때문에 입법예고 자체를 국회가 자의적이며 권위적으로 활용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입법예고라는 말 자체가 미리 알린다는 의미인데 지금 국회가 하는 방식은 일방적으로 공고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며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면서 국민의견을 받아 수정할 생각이나 의지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미 입법예고를 마치고 올라온 정부입법도 무조건 다시 입법예고를 하는 점도 특이하다.

국민들의 대의기관이 맞냐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의안발의 전 입법예고를 거치면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제시하는 것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형식적이고 다분히 국회 편의적인 입법예고는 의원발의가 쏟아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 20대 국회는 쏟아지는 법안 때문에 2만건 가까이가 자동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국회사무처 한 수석전문위원은 "현재의 입법예고 시스템은 너무 형식에 치우쳐 있다"며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이 법안심사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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