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

요즘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황혼이혼'은 동거기간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을 가리키는 말이다.

통계청의 '2017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황혼이혼이 전체 이혼건수 가운데 31.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혼한 부부 3쌍 중 1쌍이 황혼이혼인 셈이다. 전체 이혼건수에서 4년 차 이하 부부가 차지하는 비중(22.4%)을 넘어섰다. 이제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앞지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만큼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를 목전에 두고도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을 깨는 부부들이 많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참고 살자'는 생각이 강했다면 이제는 '노후라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식이 확산된 것이다.

특히 남편 은퇴 후 생기는 부부관계의 변화가 큰 몫을 한 듯싶다. 남편의 은퇴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활전반에 걸쳐 변화를 불러온다.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공간이'사무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이 직장동료이던 남편은 은퇴 후 삶의 중심이 일터에서 가정으로 급격히 옮겨진다.

남편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정으로의 금의환향을 꿈꾸지만 지금까지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시달리다가 이제 겨우 여유를 찾고 사는 재미를 느끼는 아내는 은퇴 후 집에 들어앉은 남편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부쩍 늘어난 남편의 잔소리나 간섭도 싫고 외출할 때마다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십상이다. 실제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연구팀이 2016년 발표한 45세 이상 남녀 5900여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남편의 은퇴로 인한 아내의 우울증 위험이 7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후 부부의 동상이몽 심각

오죽하면 요즘 주부들 사이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은퇴한 남편과 사이 좋게 지내기'라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다. 우리와 20년여의 차이를 두고 비슷한 현상을 겪는다는 일본에서는 이미 1992년부터 은퇴한 남편을 둔 아내들의 우울증을 가리키는 '은퇴남편증후군'이란 용어가 일상화됐다.

또 은퇴 후 맞이할 노후생활에 대한 부부의 '동상이몽'도 큰 몫을 한 듯싶다. 실제 미국에서 은퇴기 전후의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쌍 중 1쌍은 기대하는 은퇴시기와 은퇴 후 원하는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노후생활에 대한 밑그림이 다르다 보면 아무래도 갈등이 빚어지기 쉽다. 결국 행복한 노후생활은 부부 두 사람이 그리는 노후가 동상이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은퇴 후 삶에서 각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은퇴 후에도 다른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지,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은지,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지, 자녀들 가까이 살고 싶은지 등 부부 각자가 꿈꾸는 삶의 모습을 확인하고 간격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후준비에 대한 대화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직장생활과 자녀양육 등 바쁜 일상 탓에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노후를 계획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후준비를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내 다른 일들에 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급적 대화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좋은데 노후준비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나 경제적인 여건 등이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가계의 재무상태를 부부가 함께 점검하고 노후준비 전략을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다.

노후준비는 부부가 함께

노후설계를 혼자서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워낙 복잡하고 버거운 과제이기 때문에 노후준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배우자의 이해와 협조를 필요로 한다. 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듯이 부부가 힘을 모으다 보면 적어도 혼자 고민할 때 보다는 나은 해결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생각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민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법이다. 노후준비에 대한 대화는 미래는 물론 당장의 부부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 2014년 9월 발표된 삼성생명은퇴연구소의 '한국인의 은퇴준비 2014 백서'에 따르면 노후설계를 위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부부는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답한 비율이 79%인 반면 그렇지 않은 부부는 40%에 그쳐 큰 차이가 있었다.

부부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나누면서 인생의 목표를 함께 세우고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 관계다. 부부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할'인생의 동반자'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소설을 읽다가 코끝이 찡해진 적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 까칠한 주인공 오베가 유일하게 존중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의 잔소리'였다. 그리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오베는 자살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세상 어디에도 마음 붙일 사람이 없어서였다.

서로를 평생의 파트너로 여기는 여생을 건 인연이기에 부부관계는 노후준비에도 예외가 없다. 행복한 노후도 부부가 함께 준비할 때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쁘다는 이유로 먼 훗날로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부부가 함께 노후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신혼생활을 준비하는 예비부부처럼 머리를 맞대고 노후를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