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수출에서 소비로 중국의 리밸런싱과 미중 무역전쟁>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은 낙관할 만한 이유를 찾았다. 특히 국내 소비가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면서다. 공공과 민간의 총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오르고 있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50% 미만이었던 총소비 비중은 2016년 65% 가까이 높아졌다. 그 결과 GDP 대비 투자 비중이 같은 기간 약 3% 하락했다. 그럼에도 경제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반면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는 2007년 약 10%로 최고치를 찍었지만 2017년엔 1.3%로 크게 낮아졌다. 올해 1분기엔 오히려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드문 일도 벌어졌다. 한편 GDP 대비 서비스 비중은 50%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서비스 부문은 산업 부문보다 자본집중도가 약한 데다 수출과의 연동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서비스 부문의 성장은 소비 지출의 확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일부 지표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약간 높아졌고 소비 비중은 59%로 떨어졌다. 5년 만에 첫 하락이다. 수출 비중 증가를 중국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그다지 부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GDP 대비 투자 비중이 44%로 억제됐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신용강도'(경제성장 1단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채의 양)는 3.9대 1로 개선됐다. 이는 중국의 구조개혁 노력이 시작되면서 수익성 있는 부문에 신용이 투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지난 2년간 중국 15만 국영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수익률은 2%로 바닥을 기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치다. 민간기업들은 국영기업보다는 성적이 좋다. 하지만 민간기업 수익률 역시 2011년 14%대에서 지난해 약 10%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목할 건 국영기업들이 경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의 총 자산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6년 GDP의 200%를 넘었다. 이는 소비주도 경제로 전환을 꾀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에 중요한 문제다. 국영기업은 중국 총 고용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정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체력 대신 몸집을 부풀린 허약한 국영기업들이 중국 내 잉여노동력과 악성부채, 수익성 없는 자산을 흡수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에 따라 중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 소비자들 어디로 가는가

중국의 리밸런싱 구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현실은 소비 확대가 공적 지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소비를 구성하는 비율엔 변화가 없다. 정부 지출이 총 소비의 25~27%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가계 지출이다. 하지만 GDP 대비 비중으로 따지면 민간소비 비중은 1980년대 50%대 후반에서 2010년 35%로 떨어졌다. 중국이 진정 리밸런싱을 추구한다면, 중국 소비자들이 보다 크게 지갑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엔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35%대에서 39%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미국의 민간소비 비중이 GDP의 65%대를 넘어섰고, 일본의 경우 50%대 중반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갈길이 먼 상황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이유는 저축에 대한 사회적 장려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침체 때 소비 위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회안전망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주택을 할부 구입할 때 집값의 50% 이상을 계약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소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았던 모기지 사태는 벌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론 긍정적이다. 또 높은 저축률은 해외로부터 과도한 빚을 지지 않고 투자 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주기적으로 디폴트 위험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반면 높은 저축률은 민간소비가 경제의 주요 성장엔진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수출의존 경제를 탈피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된다. 개발 초기 시대 일본이나 한국이 왕성한 소비기반을 형성하기 전 높은 저축률을 보였던 상황과 유사하다.


민간소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중국의 경제기적을 낳은 경제모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밑으로 임금과 예금이자를 억누르는 효과를 내는 통화(위안화) 약세는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과도한 빚을 진 국영기업을 유지시키며,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유용했다. 또 소비 대신 저축을 장려하는 역할도 했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했던 것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중국 소비자들이 더 많이 소비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지켜볼 지표에는 가계저축이나 부채뿐 아니라 가처분소득, 소매판매율 등도 있다. 가처분소득은 지난해 약 9% 올랐다. GDP 대비 비중도 2013년 59.8%에서 지난해 60.6%로 올랐다. GDP 성장률을 고려하면 중국의 총소득이 해마다 5조달러를 넘는다는 의미다. 크레딧스위스와 맥킨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이 여행이나 여가활동에 쓰는 가처분소득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인이 해외여행에 쓰는 돈은 경상수지 흑자를 감소시키는 최대 요인이다. 반면 가처분 소득에서 가계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38.5%에서 지난해 35.5%로 하락했다.

미국 등과의 무역전쟁을 고려하면 이는 중요한 지점이다. 중국의 소비자 파워가 세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중국 수출은 지난 10년 동안 약 115% 늘어나 현재 12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미국에서보다 거의 100만대 가까이 많은 차를 중국에서 팔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폭탄 주고받기에서 '1대 1 맞짱'이 불가능하다. 미국만큼 수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정치적 논란을 일으켜 미국의 예봉을 꺾는 건 가능하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소비시장을 노리는 미국 기업들을 골라 겨냥하면 미국도 무작정 무역전쟁을 지속할 수는 없다.

촉박한 시간표대로 추진할 수 있나

물론 소비자 파워 증대에 우려점도 있다. 중국의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에 따르면 2013년 GDP 대비 가계부채는 33%였지만 지난해 49.2%로 높아졌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20%를 넘어 점차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지만,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신용카드 대출 증가율은 미국보다 3배 높다. 또 은행의 가계 대출은 지난 3년 동안 약 73% 늘었다. 해당 대출 대부분은 부동산에 투입되고 있다. 게다가 가계 대출의 상당 부분이 은행이 아닌, 그림자금융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소규모 온라인 P2P(개인간) 대출업체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간 대출한 액수는 2조3000억위안(약 378조6260억원)으로 3배 늘었다. 지난달 P2P 대출업체 수십곳의 도산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베이징 시내에서 소규모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가계소득 평균값(average)의 오름세를 중간값(median)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17년 1~3분기 가계소득 평균값은 9.1% 올랐지만, 중간값은 7.4% 상승에 그쳤다. 소득성장이 고소득계층에 집중된다는 의미다.

이는 리밸런싱 구상을 전진시키는 동시에 후퇴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실 2개의 중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 해안 도시는 이미 선진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이곳엔 고부가가치 사업이 활발해 일본과 한국, 대만의 유수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중국 내륙 도시 상당수는 여전히 개혁개방 40년의 과실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륙의 지방경제에 대해 '사상누각'(a house of cards)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두 개의 중국은 없고, 따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체의 일부다. 중국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만들면서 해안과 내륙 모두를 성공시키려 한다. 해안의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내륙을 현대화하고, 내륙의 거대한 수요와 노동력을 지렛대 삼아 해외시장에 대한 해안의 의존성을 줄이려 한다. 이같은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 역시 일찍이 번영을 구가한 서부 해안 도시와 텍사스, 북동부 도시들은 내륙의 저개발 도시들과 비슷한 관계를 맺은 바 있다.

중국이 미국과 다른 점은 '촉박한 시간표'(whirlwind time frame)를 설정하고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서구 경제가 침체기에 돌입하기 전에, 자국의 부채 문제와 자산 거품이 위기로 발전하기 전에 저비용 수출투자 모델에서 소비와 고부가가치 제조업, 서비스 등이 주축이 된 경제모델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실패할 경우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내륙과 해안의 격차를 극복하는 건 중국의 오래된 과제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가 흥망의 갈림길에 섰던 이유다. 21세기 글로벌 넘버2 경제국인 중국도 그같은 기로에 섰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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