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제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

자치분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개헌안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일 때 필자에게 미합중국 전 대통령인 클린턴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가 후보시절 선거 참모들이 다양한 정책과 홍보전략을 제안했는데 그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는 유명한 일화다.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필자는 1989년 옛 내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광주광역시와 행정자치부 등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근무했다. 문득 이 일화가 생각난 것은 최근 정부 재난안전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5년 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초대 안전정책국장으로 차출됐다. 당시 필자는 무척 당황했다. 그 전까지는 지방자치와 지역경제 진흥업무를 주로 수행해왔다. 그나마 광주광역시 교통기획과장 등 지방행정 경험이 안전관리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

4년만에 재난안전 사망자수 4000명 줄어

2014년 11월 국민안전처가 탄생했다. 안전행정부의 재난안전 총괄기능과 소방방재청, 그리고 해양경찰 기능까지 수행해야하는 매머드급 조직이었다.

국민안전처에서 근무할 무렵 광주시 행정부시장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국민안전처장관의 거절로 무산됐다. 다음날 장관께 인간적인 사정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아내도 광주에서 투병 중인 친정 부모님을 돌보고 싶다는 가정사까지 얘기했지만 장관은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서운함을 느꼈으나 공직자로서 재난안전업무를 수행해야하는 운명으로 여기고 일에 충실했다.

그 후 기획조정실장에 이어 안전정책실장, 재난관리실장 등 재난안전업무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 근무라는 꿈을 접고 재난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단 한명이라도 더 줄인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했다. 안전정책조정회의 도입, 국가안전대진단, 지역안전지수, 안전예산 사전 협의권 신설, 안전문화 3.3.3 운동 등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만들었다. 그 후 4년간의 통계를 살펴보았다. 자살자를 포함한 재난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3만2000명대에서 2만8000명대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현장에서는 여전히 문제점이 드러났다. 영흥도 낚시배 사고, 제천화재사고, 밀양화재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다시 지방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되살아났다. 그동안 중앙정부에서 도입했던 제도와 정책이 왜 지방자치단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지 의문이 생겼다. 현장 작동력을 담보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싶어졌다.

문재인정부가 탄생한 후 지자체 근무 기회가 요술처럼 다시 주어졌다. 행정자치부와 국민안전처가 통합돼 행정안전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방근무를 허락해 줬다.

지난 6개월 동안 광주시에 근무하면서 재난안전관련 업무를 현장작동의 측면에서 챙겼다. 지난 5월 전국적으로 실시된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광주광역시가 1위를 차지했다. 현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새로운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유래 없는 폭염이 발생했다. 폭염이 44일동안 지속됐고, 열대야도 30일동안 기록됐다. 그늘막 설치, 살수차로 물 뿌리기, 무더위 쉼터 확대, 취약계층 안부확인 등 폭염대책을 챙겼다. 9월부터는 도심에 3000만 그루 나무심기, 도심 바람통로 확보 등 중장기 대책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시간당 60㎜에 이르는 국지성 집중호우로 침수되었던 저지대에 대한 방재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에 권한·책임 더 많이 줘 현장작동성 높여야

이렇듯 새로운 유형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서 신속히 대처할 필요성이 커졌다.

중앙정부에서도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려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방정부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마련과 신속한 집행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국민 생활 현장인 지자체에 보다 많이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 작동성을 높일 수 있다. 이제 자치분권과 재정분권의 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다시 한번 '문제는 현장이다'를 강조하고 싶다.

정종제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