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근 태우그린푸드 대표이사

소도체 등급판정 기준이 바뀐다는 소식이다. 고급 소고기의 근내 지방(마블링) 기준을 완화해 지금보다 마블링이 적어도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과 선택권 강화를 위해 1++등급 고기는 마블링 양을 병행 표시하는 방안도 도입한다. 구이용 부위는 등급을 의무 표시하되, 마블링에 따른 맛의 차이가 적은 찜·탕·스테이크용 부위는 등급 표시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축산법 시행규칙과 축산물 등급판정 세부기준(농식품부 고시)을 개정하고, 내년 7월부터 새로운 등급기준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마련한 소도체 등급기준 보완안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만족'을 목표로 출발했다고 한다. 이상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보완안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됐다. 등급기준은 생업이 걸린 사람이 많다 보니 그 변화 역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생산자나 소비자 중 하나도 만족하기 힘든 사안인데 둘 다 만족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등급기준은 소비자 선택 기준

문득 쇠고기 근내지방(마블링)에 대해 지적하는 방송을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동안 방송 매체에서 쇠고기 근내지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는 프로그램이 자주 있었다. 당시 내놓던 단골 메뉴는 건강 문제 그리고 수입곡물사료의 과다 투입이나 사육 기간 연장에 따른 사육비 증가 문제 등이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등급판정 기준을 언급하곤 했다.

이는 쇠고기 유통 시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생산과 소비의 접점에 서 있는 유통업체들은 맛있는 부위를 찾아내거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축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늘 고심한다. 그런 유통업체들이 거래 규격으로 삼는 것이 소도체 등급기준이다. 국민 식문화 등을 반영해 만들어진 소도체 등급기준은 그간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좋은 축산물을 고를 수 있는 잣대가 되어주었다.

물론 등급기준은 고정적으로 정해놓은 법칙이 아니기에 수요자의 요구가 있다면 바꿀 수 있다. 이번에 등급기준 보완안을 마련한 배경도 그렇다. 수요자 요구에 맞추는 동시에 국내 소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변화라는 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추진 과정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해당사자가 많고, 또 그들의 견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안이다 보니 소도체 등급기준 보완방안이 나오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다. 3년 이상 소요된 생산자 소비자 유통업계 정부 학계 등의 의견 수렴과 여러 차례의 현장 적용시험 소식들을 들으며 이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시장변화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유통업자 입장에서 볼 땐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유통업체들은 수입냉장육 공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곡물 비육으로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춰 품질을 개선하는 데다 매년 낮아지는 관세로 수입쇠고기의 가격경쟁력까지 더 높아지고 있다.

늦은 감 있지만 새 바람 기대

이러한 상황에 제시된 등급기준 보완안은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품종과 성별에 따라 정육률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는 육량등급 자료를 활용해 소도체 구입 시 위험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통경험이 적은 종사자들도 육량등급 결과에 따라 소도체별 적정 구매가격을 산출하고 과다한 지방에 의한 손해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쇠고기 품질 결정에 관여하는 요소가 근내지방 중심에서 고기색(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 등 여러 항목을 갖추는 쪽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요구사항이 많이 반영됐다고 판단한다. 모든 항목이 두루 우수한 고기가 등급평가에 더 유리해지면 농가에서도 자연히 불필요한 지방의 축적을 막을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지방에 대한 부담을 덜고 등급에 따라 좀 더 편하게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바뀌었고 소비자가 바라는 것도 변했다. 근내지방에 대한 우려를 덜고 싶은 소비자의 바람대로, 시장 위기가 아닌 안정적인 시장을 기대하는 농가의 바람대로, 등급기준의 변화가 새 바람을 일으키길 기원한다.

조규근 태우그린푸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