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 지음 / 강 / 1만5000원

'386세대(30대, 80년대학번, 60년대생 통칭)'가 '586세대'가 됐다. 86세대가 문재인정부의 요직에 들어가 있는 것은 피해가기 어려운 시간의 흐름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중추 역할이 생리적 나이인 40~50대에 맡겨진 것이다. 대학마다 수업일수보다 데모일수가 많았던 세대다.

대학은 저항의 상징이었고 현장의 앞이든 언저리든 발을 디딘 학생들은 '민주투사'였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투쟁가를 부르던 무용담은 너무 흔해졌다.

세상은 10년, 20년이 지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아예 다른 판으로 접어들었다. 개인, 즐김이란 단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얽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뭉그러뜨렸다. 업그레이드에만 신경써온 86세대의 적응이 난기류를 탄 이유다.

'복만이의 화물차'는 고광률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 이 책에는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86세대'의 고민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20여년이 만들어낸 생채기를 노출시켜 아픔과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길고 짧은 6개의 이야기는 2010~2016년에 발표된 것들이다.

2012년에 내놓은 '밥'에서 '나'는 사회생활을 마흔다섯에 접한 노동운동가다. "민주화를 떠받들어 찾느라 몽땅 잃어버린 청춘"은 사라지지 않은채 삶의 고단함은 구석구석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있었다.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덕분에 간신히 복학해 졸업한 모교의 앞산'을 오르면서 그는 무차별 개발을 놓고 구청 공무원들과 한판 전쟁을 치렀다. 시민운동가 출신 구청장과 노동운동가 출신 '나'의 미묘한 선후배관계는 '86세대'의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가늠케했다.

'포스터칼라'에서는 무채색인 검정과 흰색으로만 세상을 그리려는 이분법을 중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에서 끄집어냈다. 첫사랑인 미술선생님과의 풋풋한 이야기는 서신교환, 월북 기도 등의 혐의로 고문을 받기까지 제자를 언급하지 않은 '동지애'로 길을 틀었다. 환갑자리와 화장자리는 일방적인 화해의 시간이었다.

'복만이의 화물차'는 강사인 '나'와 복만이의 이야기다. 옛날 그 학교 앞 옛날 그 선양집에서 펼쳐진 대화는 둘다섯의 '긴 머리 소녀', 채은옥의 '빗물' 등으로 덧칠됐다. 할아버지의 사회주의 활동으로 시작한 복만과 세상의 첫 조우는 전과와 고문 후유증으로 뒤틀렸고 흔들리는 손으로 화물차의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삼류부자의 자서전 대필로 '돈'을 선택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저자는 "생각을 통째로 앗아가는 것들의 횡포가 날로 극심해지는 것 같다"며 "긍휼과 부끄러움으로 쓴 글들"이라고 소개했다.

"굳이 상상을 붙이지 않아도 현실이 소설보다 더한 세상"에 대해 "품위를 지키며 사는 이들이 부럽기도 하다"고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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