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 연내에는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협상을 진전시키고 또 한 번 빅딜을 타결하려면 양측에서 수용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워싱턴에서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에서 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낸 군축전문가로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보와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등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 전모를 공개신고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극히 비현실적이므로 현실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폼페이오와 주한미군사령관 | 지난 7일 북한 방문을 마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7일 오후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해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내놓은 현실적 대안은 대체로 북한이 핵프로그램 전체의 일부인 핵물질 생산시설부터 먼저 공개 신고하고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며 이를 국제 감시기구의 감시를 받는 방안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는 종전선언을 하는 동시에 일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미동맹이 종전선언과는 상관없이 안보동맹과 주한미군은 유지한다는 점을 한미가 공동성명 또는 공동선언으로 천명한다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 찬반 양론이 갈리고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그대로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북한과 미국이 곧 실무협상에서 현실적 대안을 집중 논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 핵물질 시설 신고, 생산중단 =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이달 초 이 연구소에 게재한 북미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현실적 대안'에서 북한이 첫 번째로 취할 조치는 모든 핵물질 시설을 공개 신고하고 생산을 중단하며 국제사찰까지 받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북한에게 과거의 핵인 보유 중인 핵무기, 현재와 미래의 핵인 비축 중인 핵물질, 그리고 핵물질 생산 시설 등 모든 핵프로그램 전모를 한꺼번에 공개신고 하라는 요구는 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첫 조치로서 핵물질 시설의 신고와 생산 중단, 국제모니터링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미국이 이 방안을 제의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 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금까지 밝혔다는 영변핵시설 뿐만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다른 핵시설까지 신고해야 한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은 영변 핵시설을 중심으로 원자로 폐연료봉에서 추출하는 플루토늄과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고농축 우라늄 등 두 종류이다. 포착되기 쉬운 플루토늄보다는 작고 은밀한 시설에서 노출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더 집중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양 인근 강선을 비롯해 영변 핵시설보다 2배 이상 큰 지하핵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 핵물질을 생산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전시키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해 또 한 번의 빅딜을 타결하려면 현재까지 영변핵시설 영구폐쇄와 미국의 상응조치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영변을 포함해 북한 여려 곳에 산재해 있을 핵물질 생산시설을 모두 신고하고 생산을 중단하며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까지 받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강조했다.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핵물질 시설 공개와 생산중단, 국제 감시는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의 규모와 위치를 전부 공개하지 않고도 첫 단계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할 준비가 된 제안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자누지 대표도 미국의 소리(VOA)와 인터뷰에서 북한에 1단계 비핵화 조치로서 핵물질 생산과 관련된 모든 시설과 위치를 신고하도록 설득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동시에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모두 폐쇄하고 불능화시키며 국제사찰단 접근을 허용하는 조치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상응조치, 종전선언과 주한미군유지 = 북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거의 동시에 취해야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으므로 현실적인 상응조치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로 종전선언과 함께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유지를 공동선언 하는 방안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안했다. 즉 종전선언을 하는 것과 병행해 '주한미군을 유지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한미 공동선언을 별도로 발표한다는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종전선언을 약속해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계속 미루고 있는 주된 이유는 종전선언이 한미동맹 약화,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 이를 보완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제안이다.

이 대안대로 라면 종전선언과 함께 채택 할 한미 공동성명 또는 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평화 이후에도 한미 안보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은 계속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라는 점을 천명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미양국이 결정할 사안으로 종전선언,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며 한미양국은 종전선언, 나아가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도 한미동맹은 물론 주한미군 주둔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임을 공개 천명해왔다.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 동맹 유지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이 방안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밝혔다.

자누지 대표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논의할 때에는 북한이 강하게 바라고 있는 대북제재 완화 문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실적 대안의 논란과 장점 = 이러한 현실적 대안은 논란과 이점을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고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분석했다. 논란은 주로 미국 내 회의론, 비판론자들에게서 불거질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 전부의 공개와 불능화 대신 핵물질 시설 신고와 생산중단, 국제 감시부터 실시하자는 현실적 대안은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론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미국이 그간 추구해온 완전한 비핵화 또는 최근의 용어인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상당히 지연되는 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이 눈에 띠게 이완되고 각종 보상만 잔뜩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것으로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 현실적 대안을 채택할 경우 첫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추가 진전을 실질적으로 강력하게 억제하는 이점이 있다고 아인혼 선임연구원은 강조했다.

둘째, 미국은 한국과 함께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와 같은 값비싼 방어체계를 구축할 시급성이 사라져 가장 돈 덜 들이고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혜택을 보게 된다.

셋째, 한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다시 북한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광범위한 지지연대를 되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북미 협상이 지속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계속 완화되고 평화도 유지되며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새 관계구축, 평화체제, 한반도 비핵화라는 3대 목표와 남북정상 합의사항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