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지음 / 구름바다 / 1만5000원

남원성 전투! 정유재란이 한창이던 1597년 8월 중순, 북진하는 왜군(倭軍)에 맞서 조선의 군민(軍民)이 5일간 대항해 싸운 전투이다. 남원성 전투를 역사에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싸움은 철저히 조선의 패배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과연 남원성 전투는 조선의 처절한 패배인가. 전투를 지휘한 사령관과 무능하고 비겁한 선조와 조정의 눈으로 보면 처절한 패배일 수 있다. 성이 함락된 후 살아남은 자는 한명도 없었다. 왜군은 이 전투에서 죽은 조선사람의 코을 베어다 무덤(耳塚·코무덤은 잔인하다고 귀무덤으로 명함)을 만들어 승리를 자축했다.

고형권 작가는 여기서 이 소설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남원성 전투는 진 싸움이 아니다" "남원성 전투는 조선민중의 빛나는 승리다"라고.

당시 남원성을 지킨 무수한 이름없는 민중의 입장에서 보아도 과연 패배한 싸움일까. 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진 시민군이 패자일까. 고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선조가 아니라 이순신이 아니라, 정여립이 아니라, 한물과 수련, 백이, 초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순신의 명량이 아니라, 그 때 노를 저었던 그 명량의 객군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관군의 이야기가 아닌 남원성을 지킨 민중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남원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 전주성에 무혈입성한 후 북진을 지체한 것에서 이 싸움이 왜군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었음을 직감한다. 승리하고도 나아가지 못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터. 작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일본인 승려 '경념'의 일기에서 진실을 찾는다. 4000명의 민군(民軍)에 사실상 패배한 것은 6만의 왜군이었다.

작가는 조선민중이 승리임을 본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조선에서 추석이라고 부르는 오봉(お盆)이 지나가고 사흘 후 히데요시가 죽었다. 사인은 반위(위암)였다. 궁녀들은 독살이라고 수군거렸다. 남원성이 왜군에 무너진 뒤 딱 일년이 흐른 날이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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