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만2000원

#기억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다. 100년 전의 소민들도 지금 우리들 각자가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에 필자는 앞으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필부필부의 증언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할 생각이다. 한마디로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씨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것이다.

새로 나온 책 '100년 전 살인사건'은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를 부제로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학계는 다양한 분야로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료로 활용되지 않았던 다양한 사료들이 새롭게 발굴되거나 재평가되면서 과거의 일상과 생활 영역이 차츰 복원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 있는 수백건의 살인사건 보고서 '검안(檢案)'을 주제로 집필된 이 책 역시 이런 흐름에서 탄생했다.

500여건의 '예외적 일상'을 보다

저자인 김 호 교수는 역사학계에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의학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 저자는 검안이라는 '예외적 일상'의 기록을 통해 김씨나 이씨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필부필부의 증언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다.

김준근, '살인에 검시하는 모양',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검안은 '검시문안(檢屍文案)'의 줄임말로 조선시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검시하고 작성한 시체검사 소견서, 즉 법의학적 판결문인 '시장(屍帳)'과 사건 관련자 심문 기록인 '공초(供招)'를 포함한 일체의 조사 보고서를 말한다. 규장각에 소장돼 있는 검안은 2000여책으로 사건으로 치면 대략 500여건에 이른다. 대부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즉 100여년 전에 작성된 기록들이다.

검시의 경우 지금과 달리 시체를 해부하는 게 아니라 외상과 색을 주로 살폈다. 공초의 경우 사건 관련자들을 소환해 심문,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아전들이 모든 심문과정을 기록했는데 관련자들의 진술을 구어체로 그대로 받아 적었다. 저자에 따르면 공초는 오늘날의 녹취기록에 버금가는 취조기록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웠던 여성들

검안에 전하는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양상을 살펴보면 강도나 절도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향촌의 양반 가문, 계나 두레 같은 평민들의 상호 부조 조직 등 다양한 이익 집단들 간에 살인이 발생했다. 또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그 중에서도 과부나 외지에서 왔거나 가난해 남의 집에서 기식하던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됐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장 내밀한 사회집단인 가정 내에서도 발생했다. "안도흠은 반상의 구별이 엄격하고 남녀의 유별이 분명한데 어찌 상놈이 반가의 여성을 겁탈할 수 있냐며 도주한 정이문 대신 그의 조부라도 체포하면 손자가 관아에 자수할 것이니 기다렸다가 처벌해 달라고 군수에게 요청했다. … 그런데 취조과정에서 정태극은 자신의 손자가 이미 안도흠의 며느리 황씨와 5년 이상 불륜관계를 맺어왔다고 진술했다."

조선시대에도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법의학 증거였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시체를 검시해 사인 분석에 참고했는데 조선 후기에는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면서 법의학 지식이 발전했다. 특히 조선시대 최고의 법의학 교과서 '증수무원록언해'에 실린 여러 가지 수사기법은 수사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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