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윤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던 2010년대 초반 가까운 선배를 통해 암호화폐를 처음 접했다. 선배들은 하버드, MIT, 스탠포드, 칼텍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물리학 또는 금융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특히 금융공학 박사들에게 암호화폐는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운 좋게도 뛰어난 선배들과 두루 가깝게 교우했던 덕에 필자도 대화를 나누며 흥미를 느끼고는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난 올 1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거래규모는 16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코스닥 시장의 거래규모인 302조원의 무려 절반을 상회하는 액수로써, 총액 1조원 미만으로 집계조차 안 되던 2017년 3월에 비하여 10개월 만에 160배가 넘은 것이다. 이후 해킹 등 여러 사건으로 암호화폐의 거래규모는 다소 줄었음에도 여전히 수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그 잠재성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ICO, 거래소 그리고 암호화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논하는데 있어, ICO(Initial Coin Offering)를 빼놓기 어렵다. ICO란 통상적으로 블록체인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 그 프로젝트에 대한 백서(White Paper)를 공개해서 코인, 토큰 등의 대가를 주고 대중으로부터 이더리움과 같은 코인 등의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9월 29일 배포된 ‘기관별 추진현황 점검을 위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 개최’관련 보도 자료(금융위원회)에서 ICO를 ‘디지털토큰을 발행해 투자금을 가상통화 등으로 조달’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그 기반 기술이나 프로젝트 명칭·용어 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형태 ICO를 금지했다.

금융위원회는 이어서 2017년 12월 28일 가상계좌 서비스 제공을 금지하고, 거래자의 은행계좌와 가상통화 거래소의 동일 계좌 간 거래만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실시했고, 올해 1월에는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까지 발표하며 은행의 가상통화 취급업소에 대한 주의의무를 강화했다.

한편 암호화폐 거래소는 전자상거래법 제12조에 따라 소속 지방자치단체에 통신판매업자로 신고하고 그 통신판매업의 일종으로써 암호화폐 거래소와 그 중개업을 영위해왔다. 그런데 그 주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암호화폐 거래소는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발표하여, 빗썸·업비트 등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마저 통신판매업자 지위를 포기한 상태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부터 TF를 구성해서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 및 ICO, 거래소 등의 허용 여부 등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 왔으나, 2018년 10월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암호화폐를 직접 규제하는 법령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법적 공백 상태에 있다.

적절한 정책·법령 제도 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진전은 있었다. 우선 대법원은 2018년 5월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이라며, 압수한 비트코인을 몰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암호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또한 통계청 통계정책국은 지난 7월 ‘블록체인기술 산업분류 해설’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라 블록체인 관련 산업 대부분을 분류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암호화 자산 중개업자로 정식 분류된다.

이외에도 박용진 의원이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암호화폐 관련 입법안이 계속 발의되고 있으며, 대전지방법원 이정엽 부장판사를 주축으로 여러 판사, 검사, 변호사, 기자, 업계 관계자들이 뭉친 블록체인법학회도 지난 8월 출범하여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뿐만 아니라 ICO, 거래소 등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조속히 관련 정책·법령과 제도가 수립되어 대한민국이 IT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보다 공고히 하고,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의 비지니스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더욱 두터이 보호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충윤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