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의결권 반대 주주행동 및 간접적 패널티 부과 움직임 확산

더불어민주당이 창업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도입을 제안하면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기술력 있는 창업벤처기업에 한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게 해 경영권 방어와 안정적 자금 조달에 도움을 주자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캐나다, 유럽 등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차등의결권 허용이 마치 보편화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차등의결권은 세계적 추세가 아니며 해외에서 실제로 이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또 주요 선진국에서도 차등의결권 폐지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며 반대 주주행동 및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에 대한 간접적 패널티 부과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1주당 차등의결권 최대 10개" =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에는 비상장 벤처기업이 주주 동의가 있으면 1주당 의결권 수를 최대 10개까지 '차등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최 의원은 개정안에 "벤처기업의 경우 창업자의 철학과 노하우가 기업발전에 필수적이나 대주주의 경영권이 취약해 창업정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해 경영권 불안정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부채 위주의 자금조달 유인을 낮추고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을 밝혔다.

차등의결권제도는 최대 주주 등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해당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한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을 크게 감소시킴으로써 초기 창업자가 장기적인 비전으로 경영을 수행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반면 많은 의결권에 비해 적은 경제적 이해를 가짐으로써 사익편취 유인을 높이고 여타 주주의 경영관여를 차단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소액주주권리 침해 = 때문에 차등의결권이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고, 벤처기업이 성장한 이후 복수의결권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 또한 거세다.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며 재벌기업들이 경영권을 악용할 가능성이 많아 그동안 애써 이뤄온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기업 오너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운열 의원의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야당과의 논의 과정에서 대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자유한국당과 재계 측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상장벤처기업으로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상장기업에도 차등의결권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독일·이탈리아, 도입했다 폐지" = 전문가들은 차등의결권은 세계적 추세가 아니며 해외에서 실제로 이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얘기한다.

방문옥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차등의결권은 해외에서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 등 창업 초기 자본력이 떨어지는 IT 벤처기업 등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되고 있다"며 "그러나 제도는 있지만 운영을 까다롭게 하고 있어 실제 이용 사례는 많지 않은데다 폐지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방 연구원은 "해외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 곳이 있지만 실제 시행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며 "알리바바나 구글, 페이스북 등이 차등의결권을 유지한 채 상장할 때도 평등한 대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란은 거셌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의결권에 대한 반발여론이 심해지면서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했다가 없애기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비상장회사에 한해서만 차등의결권이 허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 등이 회원으로 있는 미국의 기관투자자협회는 자체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에 1주 1의결권 원칙을 명시하고 차등의결권에 반대하는 주주행동을 벌이고 있고,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에 간접적으로 패널티를 부과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면을 발송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연기금 캘퍼스는 차등의결권을 유지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원칙 도입을 고려한 바 있다.

지난해 휴대폰 사진공유 어플리케이션 업체인 스냅(Snap Inc.)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무의결권보통주를 발행해 논란이 되자 S&P 다우존스 인덱스 지수들, S&P 500, S&P 1500 등 지수에는 차등의결권 도입 회사들을 더 이상 추가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미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는 논란이 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고, 현재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그루폰은 2016년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폐지하도록 정관에 정한바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난 해 9월 캐나다 기관투자자 연합인 CCGG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 제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경영권을 가진 주주의 경제적인 이해와 회사의 이익을 일치시키기 위해 1주에 4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경영권을 가진 주주가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의석을 3분의 2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또 신규 상장기업의 경우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관행임을 명시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경우에는 회사의 이사회로 하여금 차등의결권 제도를 해소하는 시점을 정할 것을 권고해 점진적으로 차등의결권 제도를 폐지하도록 유도했다.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차등의결권 제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많은 국가에서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기업 수가 감소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토론토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1993년 163사(14%)에서 2010년 83사(6%)로 감소했고, 유럽의 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995년과 2001년 사이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47% 감소했다.

이밖에 런던증권거래소와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장기투자자에 대해 2배의 의결권을 인정하려는 유럽위원회의 움직임에 대해 1주 1의결권 원칙을 강조하며 반대한 바 있다.

◆홍콩, 마지못해 차등의결권허용 = 한편 홍콩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식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를 제일의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기업지배구조에 관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선도하며 뉴욕, 런던 등과 경쟁하고 있는 시장으로 최근까지도 차등의결권 도입을 반대했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를 선택하고 샤오미 역시 홍콩거래소 상장 여부를 저울질하는 상황이 되자 마지못해 결국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홍콩거래소는 최종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까지 수년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양한 연구와 투자자들과의 대화를 진행하여 각종 보완대책을 마련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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