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스트리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2014년 '레버리지론'(leveraged loans) 시장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당시 미국 레버리지론 시장 규모는 7000억달러였다. 하지만 최근 1조3000억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레버리지론은 보통 이미 부채가 많은 투기등급 기업들이 회사 자산을 담보로 잡히고 추가로 발행하는 채권을 지칭한다.연준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다. 또 다시 시장 및 관련 투자자들에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7일 금융전문매체 '울프스트리트'에 따르면 연준 이사회 은행감독규제위원회에서 리스크·감시·데이터 부문 책임자인 토드 버밀리예 선임 국장은 지난달 하순 뉴욕에서 열린 '론 신디케이션과 트레이딩 어소시에이션' 23차 회의에 참석해 "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적절한 통제 없이 위험한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며 "금융시스템의 안전성, 건전성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버밀리예 국장은 수많은 금융기관이 위험한 신용상품에 얽히고설킨 상황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전국 신용 공유'(Shared National Credit)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레버리지론의 특징은 차입매수(LBO), 특별배당금, 차환 등 3가지다. 사모펀드기업은 인수합병 대상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회사를 합병한 뒤 회사 자산을 팔아 이를 되갚는다. 인수된 기업은 특별배당금 형식으로 사모펀드 소유주에게 돌려준다. 사실상 자산 강탈과 같은 이러한 과정을 완곡하게 '자본재구성'(recapitalization)이라 부른다. 체력이 허약해진 피인수 기업은 빚으로 빚을 갚는 차환의 악순환에 빠진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레버리지론에 크게 끌린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론 상품의 수익률은 시중 금리가 오르면 덩달아 오르는 변동금리 방식이다. 때문에 투자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준은 기준금리를 지속 올릴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1조3000억달러 규모의 레버리지론 시장은 점차 시한폭탄으로 변하고 있다(▶ 2018년 7월 17일 13면 '정크등급 사랑하는 거인들, 금융시장 안정성 위협' 참조).

버밀리예 국장은 "레버리지론 시장의 리스크 관리가 너무 느슨해 많은 취약점이 발견된다"며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적절한 리스크 평가 없이 위험스런 투자상품에 뛰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약식 계약 레버리지론의 급증이다. 버밀리예 국장은 "이자 지급과 관련해 지켜야 할 의무조건이 없는 '약식계약'(Covenant-Lite) 레버리지론이 만연하면서 대출을 시행한 은행의 권리 보호가 크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처럼 약식계약 레버리지론은 최근 시장을 완전 장악했다. 2014년 6월 전체 레버리지론의 55%에 불과했던 약식계약 대출은 올해 8월 기준 78.6%까지 올라갔다(그래프 참조).

금액 기준으로 보면 2014년 3850억달러(7000억달러의 55%)에 불과했던 약식계약 레버리지론은 올해 1조200억달러로 급증했다. 시장 침체 상황에서 약식계약 레버리지론이 어떤 상황을 연출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다.

이뿐만 아니다. 이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손쉽게 빚을 늘리고 있다. '인크리멘탈 론'(Incremental Loan) 또는 '인크리멘탈 퍼실리티'(Incremental Facilities)로 불리는 대출이다. 쉽게 말해 기존 대출에 추가적으로 빚을 더하는 능력으로, 선순위 채권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담보 순위에서 선순위 채권자와 동일한 자격을 부여한다.

버밀리예 국장은 "인크리멘탈 론 방식은 기존 채권자와 동등한 권리를 주면서 추가 대출을 허용한다"며 "이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또 과거보다 느슨한 규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출에 대한 용처 제한이 거의 없다. 따라서 비생산적 목적에 할당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달리 말하면 사모펀드가 소유한 기업들이 인크리멘탈 론을 통해 기존 빚에 빚을 더하는 것이다. 자본 구조상 기존 대출과 동등한 우선권을 갖는다. 그리고 빌린 돈은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생산적인 무언가에 투자되지 않는다. 사모펀드 소유주에게 특별배당금을 지급한다든지 하는 등 비생산적 목적에 주로 할당된다. 기존 대출 은행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을 추가로 떠안게 된다.

결국 이런 행태는 '담보 갉아먹기'(collateral stripping)에 비유할 수 있다. 사모펀드가 우선권을 가진 채권은행들이 확보한 담보 자산을 빼앗는 데 사용하는 특별전략이다. 첫 번째 채권자들은 담보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표적 사례는 J. 크루, 펫스마트, 니만 마커스 등이다. 이들 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들은 담보를 서서히 갉아먹었고, 결국 피인수 기업들은 파산에 이르렀다. 첫 번째 담보를 가졌다고 믿은 은행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EBITDA(세전, 이자지급전 이익) 애드백(add-backs)라는 비뚤어진 관행도 만연하다(▶ 2018년 7월 18일 13면 '레버리지 낮추려 미실현수익 부풀려 … 지옥의 고통 온다' 참조). 한 기업이 부채를 얼마나 적절히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EBITDA를 높이기 위해 미실현 비용절감을 순익에 반영하는 행태다. 사모펀드들은 LBO 인수합병에서 이런 관행을 활용해 대출액을 크게 늘린다.

버밀리예 국장은 "레버리지론 시장에 적절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시스템에 안전성, 건전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울프스트리트는 "하지만 연준의 금리 억누르기 10년 동안을 거쳐온 투자자들은 연준의 경고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들은 연준의 거듭된 경고에도 지속적으로 레버리지론 상품을 계속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은 회사채 시장, 특히 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예정된 '대량학살'이 연준이 예고한 기준금리 인상 행보를 늦출 것인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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