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열 살 소년은 그날 함께 놀던 다섯 살짜리 동생을 잃었습니다. 집 밖에 있던 동생이 물에 쓸려갔습니다. 소년은 집 안에서 그걸 보았습니다. 그 후 마을을 떠나 멀리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소년이 돌아왔습니다. 그리운 엄마 아빠가 여기 임시대피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SK건설이 라오스 쎄삐얀-쎄남너이 댐 붕괴 사고를 낸 지 벌써 석 달이 되어갑니다. 집계조차 않는 캄보디아를 빼고, 라오스에서만 수백 명이 죽고 1만 6000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SK건설은 사고 직후 집을 잃은 6000명 이재민에게 임시대피소를 설치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소년이 돌아온 중등학교 임시대피소 생활도 석 달이 되어갑니다. 처음 먹을 물도 옷가지도 없이 학교 교실 바닥이 그대로 아비규환 대피소였습니다. 곧 일본국제협력단과 세계식량계획이 식수와 식량을, 오스트레일리아 원조기구가 천막을, 국제기구와 민간단체들이 생리대에서부터 양동이, 가방 등 생활용품을 보내왔습니다.

국제금융기구 개발 부추켜

수출입은행이 이 '수재민'들을 돕기 위해 3천만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습니다. 은행은 라오스를 돕는 민관협력사업을 명분으로 SK건설에 국민세금 955억 원을 지원한 기획재정부 산하 대한민국 유상원조 집행기관입니다. 은행은 SK건설의 댐 사업이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퇴짜 맞은 이유가 수몰지역 이주민 대책 미비와 (안전과도 직결된) 환경영향평가 부실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시민단체는 물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그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개발협력기본법과 국회 예산심의도 무시한 채 2015년 기획재정부의 결정에 따라 서둘러 SK건설에 돈을 지급했습니다. 사고 후 은행은 시민단체들이 낸 정보공개청구에 기본적인 계약관련 서류들을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라오스는 정부예산 절반이상을 원조자금에 의지하는 세계최빈국입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전봇대가 들어가지 못하는 마을이 수두룩하고 전봇대가 바로 옆에 있어도 돈이 없어 전기를 못 쓰는 빈곤층은 더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라오스는 선진국 차관이나 민간자본을 획득한 외국기업이, 대형 댐만도 50여 개 이상을 건설해 생산한 전기는 외국으로 (주로 이웃나라 타이로) 팔아, 외국기업이 수익을 얻는 경제개발계획, '아시아의 배터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라오스의 이러한 개발계획은 국제금융기구들이 부추기고 선진국 개발업자들이 주도해왔습니다.

그러서인지 라오스 정부는 SK건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라오스 총리는 "댐 사고 이후 한국이 여러모로 지원해 준 것에 대해, 특히 SK건설이 도와 준 데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고작 십여 명의 긴급구호대를 파견해 세 차례 의료 진료를 지원했을 뿐이고, SK건설은 순수하게 인도적 지원으로 약속한 바의 1/10도 지키고 있지 않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SK건설은 실수더라도 가해자로서의 책임지는 것은 고사하고 사고 발생의 원인과 처리 경과를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의 공개를 라오스 정부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 중이라는 핑계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정부조사위원회에 SK건설을 포함해 개발기업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전문가들이 포함되었음은 당연합니다.

진실은 감춰질 수 없어

그러나 진실은 감춰질 수 없습니다. 정부조사위원회 결과와 상관없이 각종 UN 기구, 특히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서 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고 지역과 피해 지역이 지원 사업지인 국제비정부기구(INGOs)서 활동가들은 이미 사고 직후부터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해 왔습니다. 백 여 명이 넘는 이들 활동가 네트워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해 자료를 상호 검증하기까지 합니다.

세월호는 벌써 네 해가 지났고, 포항 지진이 발생한지는 일 년이 됐습니다.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80% 이상의 주민이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합니다. 동생을 잃은 라오스 소년도 엄마 아빠와 같이 신경안정제로 버티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기획재정부 수출입은행의 유상원조사업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일까요?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